[손바닥 다큐소설]청계천 빈민의 성자(29):정의는 입술과 머리가 아니라 손과 발이 하는 것

입력 2020-08-10 08:49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국민일보 홈페이지 ‘미션라이프’를 통해 연재물을 볼 수 있다.

1945년 9월 5일 일본 외무대신이 미군이 제시한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서는 미군 태평양지역 총사령관 맥아더가 일본으로부터 항복 조인식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1951년까지 일본 점령 연합군 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 잔재를 쓸어내고 일본 국민을 친미화(親美化)시키는 데 역점을 두는 정책을 폈다.

일본군의 해산, 군국주의자 징벌, 자유주의 헌법 기초 확립, 경제 복구, 토지 재분배 등이 이뤄졌고 교육, 노동, 인권 등의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자면 친미 성향의 지도자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미 정부는 각 분야 우수한 지도자를 선발해 미국의 선진 문명을 보여주고 미 대학 등을 통해 미국식 자유주의 사상을 교육 했다.

어머니는 그들이 보기에 새로운 일본 여성계를 이끌어 나갈 인재였다. 더구나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교육 속에서 성장한 어머니는 더할 바 없는 친미적 인재였다. 10여 명의 여성계 맥아더 장학생에 선발된 어머니는 몇 개월간 미국에 가서 선진 소비자운동과 노동운동 시스템을 돌아보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특정 국가나 특정 이데올로기에 좌고우면하는 분이 아니었다. 오직 성서 안에서 지혜를 구하고, 예수의 생명 사상을 지키려는 분이었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지나친 찬양도, 그렇다고 비난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쓰셨다.
어머니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다.

소비자운동을 중심으로 폭넓게 활동하시다 보니 일본의 여성인권운동가 되어 있었고, 이 때문에 중국(당시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구소련) 여성단체들로부터도 초청을 받았다. 동서 이데올로기가 지구촌 전체를 양분하고 있던 상황에 대단히 위험한 행보였다.

“예수의 정의는 입술이나 머리만이 아니라 손과 발을 움직여서 하는 것이다. 예수는 이 땅에 정의가 하수 같이 흐르도록 하라고 가르치셨다. 어찌 행동하지 않고, 예수의 정의를 이루려는가?”

그런 어머니는 미국 소비자운동 지도자 랄프 네이더를 아시아에 처음 소개했다. 네이더는 제너럴모터스사의 자동차 결함 등을 지적해 소비자보호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어머니는 평생 노동자, 소비자, 여성 등의 권익을 위해 헌신했다. 그 때문에 한국 소비자운동 단체로부터 수차례 초청을 받아 특강 등을 했다. 어머니의 유해는 태평양에 뿌려졌다. 하나님의 자녀로 만민 평화를 위해 한평생을 살고 간 분이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