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받고, 누군 못 받고”…트럼프, 경제살리기 ‘단독 플레이’ 후폭풍

입력 2020-08-10 06:25 수정 2020-08-10 06:43
지출·세금 권한 의회에 있는데…헌법 위반 논란
실업자만 지원…“영세 자영업·저소득 노동자 어떻게”
유예된 급여세, 복지 재원…예산 부족 복지 ‘축소’ 우려
트럼프, 경제살리기 노력…단기적으론 손해 없을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신 소유 골프클럽 리조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행정조치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강행한 행정조치들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실업수당 연장·급여세(payroll tax) 유예 등 4건의 행정조치에 서명했다. 코로나19 추가 부양안에 대한 여야 협상이 결렬되자 의회 승인이 필요 없는 행정조치라는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민주당은 9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조치에 대한 공세수위를 높였다. 미국 언론들도 형평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이번 행정조치로 실업자들은 계속 지원받을 수 있게 됐지만, 코로나19로 생계가 막막해진 영세 자영업자와 월급이 크게 낮거나 코로나19로 매우 줄어든 저소득층 노동자가 지원 대상에서 빠진 점은 형평성 논란을 낳고 있다.

그러나 11월 3일 미국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이번 승부수로 단기적으로는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로 혜택 보장된 유일한 노동자 그룹은 변호사”

야당인 민주당은 문제 삼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 헌법은 연방정부의 지출과 세금에 대한 권한은 기본적으로 의회에 부여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조치 방식을 통해 이를 추진하면서 헌법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번 조치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조치로 혜택이 보장된 유일한 노동자 그룹이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변호사들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조치를 둘러싸고 법적 공방이 빚어질 것이라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NYT는 그러면서 이번 조치가 경제 회복을 위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조치는 4건이다. 실업수당 연장·급여세 유예·학자금 융자 상환 유예·세입자 강제퇴거 중단이다. 이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실업수당 연장·급여세 유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지난 3월 1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노동센터 앞에 줄 서 있다. AP뉴시스

“실업자만 혜택…영세 자영업자·저소득 노동자 형평성 논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조치에 따라 지난달 말 만료된 실업수당이 연장된다. 대신 액수는 주당 600달러(71만원)에서 400달러(48만원)으로 낮아진다. 또 각 주(州)가 비용의 25%를 지불할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3000만명 이상의 미국 실업자들이 이번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NYT는 이번 행정조치 지원 대상에 영세 자영업자와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저소득인 노동자층이 빠졌다고 비판했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도 “이번 행정조치의 불리한 점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인정했다.

또 주급 400달러 미만의 저소득층 노동자의 경우 일은 하지만 실업수당을 받는 실업자들보다 수입이 적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간 총소득 7만 5000달러(8900만원) 이하인 미국 성인에게 1인당 1200달러(142만원)을 일괄 지급했었다.

“급여세 줄면 복지 재원도 줄어…제 살 파먹기”

트럼프 대통령이 급여세를 유예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대선에서 이긴다면 (급여세를) 폐지할 것”이라고 한발 더 나갔다.

AP통신은 그러나 임금 생활자의 급여세가 메디케어(노인 의료보험)와 사회보장제도의 재원이 된다고 지적했다. 임금을 받는 사람은 급여의 7.65%를 급여세로 내고, 여기에다 임금을 주는 고용주가 별도로 7%의 급여세를 지불한다고 AP통신은 설명했다. 이번 급여세 유예 혜택은 연 소득 10만 달러(1억 1885만원) 미만인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급여세 유예로 줄어든 복지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급여세가 감소하면 사회보장제도를 위한 정부의 자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문제가 생긴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실업수당 400달러의 25%를 주(州) 정부가 부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뜩이나 가벼워진 주 정부의 지갑이 더욱 헐거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전 실업수당 600달러는 전액 연방정부가 지불했었다.

NYT는 급여세가 줄어들면서 연방정부와 주 정부, 시·카운티 등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 살 파먹기’로 인해 오히려 복지정책이 축소되고, 공무원들의 임시 휴직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 6일 미국 의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P뉴시스

민주당 “헌법 위반” 총공격…트럼프, 단기적으론 손해볼 것 없어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조치들은 빈약하고, 부실하고, 헌법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조치들을 한 마디로 표현할 경우 ‘쓸 데 없다(paltry)’는 것”이라며 “실행이 불가능하며 범위가 너무 좁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강행 의지를 표명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폭스뉴스에 “우리는 이 모든 조치에 대해 법률고문실에서 허가를 받았다”면서 “민주당이 법원에 소송을 내고 실업급여 집행을 보류하고 싶다면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도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어쨌든 우리의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정조치들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단기적으로는 잃을 게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유권자들에게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NYT는 미국 경제의 회복이 더딜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단독 플레이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