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가 비 내리는 숭의아레나(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울렸다. 장내 아나운서가 신임 조성환 감독을 소개하자 관중들은 미리 인천의 검정 파랑에 맞춰 준비한 ‘welcome(웰컴) 조성환’ 걸개를 걸었다. 경기장 다른 편에는 ‘포기하는 선수는 프로자격 없다’ ‘남 탓 말고 일단 살고 보자’라는 걸개도 보였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9일 성남 FC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불러들여 하나원큐 K리그1 2020 15라운드 경기를 치렀으나 나상호가 2골을 넣은 성남에게 0대 2로 패했다. 이로써 인천은 앞서 치른 광주 FC와의 경기에 이어 2연패를 기록하며 승점 5점으로 쳐져 강등 가능성이 더 커졌다. 성남은 반면 승점 17점을 쌓으며 단숨에 리그 6위로 뛰어올랐다.
이틀 전인 7일 조성환 감독을 새 감독으로 맞이한 인천은 승점 5점으로 꼴찌로 처져 있어 시즌 첫 승이 간절했다. 리그 초 기세를 올렸던 성남도 승점 9점 차긴 했지만 한 경기 덜 치른 상황에서 일시적이나마 인천의 바로 위까지 순위가 떨어진 터라 슬슬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활이 걸린 승부인만큼 양 팀은 격렬하게 맞붙었다. 인천은 아길라르가 중원에서 측면으로 공을 투입해 역습을 노렸다. 성남도 질세라 발이 빠른 나상호를 자유롭게 풀어놔 인천 골문을 겨냥했다. 전반에만 슈팅이 총 12개 나올 정도로 빠른 템포였음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에 전반 반칙이 총 15개, 경고도 2장이 나왔다. 성남 공격수 김현성은 인천 수비와 충돌, 선수복을 빨갛게 적실 정도로 심한 출혈이 일어나 일찍 교체됐다.
후반 시작과 함께 경기 흐름은 극적으로 바뀔 뻔했다. 후반 2분 인천 진영에서 김도혁이 길게 측면으로 찔러준 공을 왼쪽 날개 이준성이 빠르게 쫓아들어갔다. 따라가던 성남 수비 이태희의 발에 이준석이 걸려 넘어지면서 심판은 이태희에게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성남 수비의 항의에 심판은 VAR(영상판독) 뒤 퇴장 판정을 취소하고 앞선 장면에서 인천 수비 오반석의 파울을 선언했다.
오히려 골을 터뜨린 건 한숨 돌린 성남이었다. 후반 12분 성남이 인천 페널티박스 왼쪽 앞에서 잡은 프리킥 기회에서 나상호는 오른발 감아차기 슛을 시도, 정확하게 골문 오른쪽 아래 구석에 공을 꽂아넣었다. 자신의 국내 복귀 첫골이다.
갑작스레 얻어맞아 급해진 인천은 후반 21분 측면 공격수 송시우를 새로 투입해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으나 결국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정규시간 종료를 2분 남긴 상황에서 인천 골문 앞에서 역습하던 나상호에게 다시 기습적인 감아차기 슛을 허용, 추가골을 내줬다.
한편 인천은 이날 이천수 전력강화실장이 사직서를 내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근 감독 선임과정에서 불거졌던 구단 내 잡음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많다. 이 실장은 이임생 전 수원 삼성 감독 선임 건이 무산된 뒤 협상 작업을 직접 주도해 예상보다 매우 이른 시일에 신임 조성환 감독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인천 구단 관계자는 “이천수 실장이 여름 이적시장도 끝났고, 새 감독도 데려온만큼 올 시즌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면서 “직원들과 마지막으로 인사하며 조 감독을 잘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팀이 원하면 언제라도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인천=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