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전시관’은 없었다”

입력 2020-08-07 15:00 수정 2020-08-07 15:00
'공간이음' 가상 투시도.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는 모습. 국립국악원 제공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3층은 새 단장 준비로 분주했다. 국악박물관이 개관한 지난 25년간 자료실 등의 용도로만 쓰여 주목받지 못했던 이 공간은 아름다운 국악 전시물과 알록달록한 원색의 디자인에 힘입어 트렌디한 카페로도 보였다. 7일 새로운 국악 체험형 박물관으로 탈바꿈하는 이 공간의 이름은 ‘공간이음’. 국립국악원이 9억원을 들인 프로젝트로 전체 공간 100평(약 330㎡)의 반절은 8만2000여점의 시청각·도서 자료를 모은 방대한 국악 자료실로, 나머지 반절은 연중 내내 기획 전시가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 꾸며진다.

이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한 주인공은 김희선(51)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이다. 2018년 한국인 최초 유네스코 산하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동아시아음악연구회장에 선출되는 등 탄탄한 해외 네트워크와 전문지식을 가진 그는 2016년 9월 국립국악원에 부임해 전통예술 보존·전승을 위한 다양한 연구사업을 펼쳤다.


'공간이음'을 이끈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권현구 기자


‘공간이음’은 올해 8월 임기 종료를 앞둔 그가 지금까지 모아온 전통예술자료들을 한 데 펼쳐 놓는 총아로 볼 수 있다. 6일 국악박물관에서 만난 김 연구실장은 “지금까지 전통 음악을 방대하게 모아놓은 박물관이나 전시실은 해외에도 많았지만 이처럼 전통 자료들과 문화 공연을 한 데 묶은 미래형 전시공간은 ‘공간이음’이 거의 최초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공간이음’은 “국립국악원의 문턱을 낮추고 대국민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철학이 녹아든 공간이기도 하다. 전시실 곳곳에 키오스크와 컴퓨터가 마련돼 관람객은 흥미를 가진 자료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4년 전부터 자료 수집과 함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10여 차례 자문회의를 거쳐 전시 공간 구성에도 신경을 쏟았다. 국악 자료실에 들어갔다가 기획 전시 공간으로 움직이는 동선을 비롯해 휠체어와 유모차 등으로 이용하는 관람객들을 고려해 동선별 통로를 최대 폭으로 넓혔다.


'공간이음' 조감도. 사진에서 윗쪽은 국악자료실, 아랫쪽은 특수자료실이다. 국립국악원 제공


이 ‘공간이음’에 의미를 더하는 공간은 국악자료실 한편에 마련된 특수자료실(북한음악 자료실)이다. 이곳에서는 2016년부터 국립국악원이 지금까지 모은 1만5000여점의 자료들이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으로 먼저 5000여점의 북한음악 관련 단행본·신문·잡지·팸플릿·영상·사진·음원 등이 선보인다. 규모만으로도 국내 최대다.

이 안에는 민간에서는 몇 권씩만 보유하고 있던 연속간행물 ‘조선음악’이나 ‘조선예술’ 전권 등도 포함될 예정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 1950~60년대 초기부터 북한 내부의 전통음악 변화를 소상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로 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들이다. 2016년부터 특수자료실에 대한 통일부 인가를 받은 김 연구실장이 연구원들과 함께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집한 자료들이다. 이듬해 한 일본인 수집가로부터 북한 자료 1만여점을 기증 및 구매한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6일 오전 국립국악원 관계자가 '공간이음'에서 키오스크를 작동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그렇다면 이처럼 북한 자료들을 수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취임 초반부터 전통예술의 수집·연구범위를 ‘한민족 예술’까지로 확장하겠다는 비전을 세운 김 실장은 “한국 음악에 한정되는 것과 한민족 모든 음악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학술적·문화적 가치 측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향후 세대에도 뜻깊은 유산이 될 것”이라며 “한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공공기관 역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다만 특수자료실에서 자료를 보기 위해서는 별도의 보안 절차가 필요하다.

특히 올해는 북한음악자료실 개실을 기념해 북한의 음악인과 민족기악·성악·무용·가극 등을 망라한 기획전시 ‘모란봉이요 대동강이로다’가 12월까지 기획전시 공간에서 선보인다. 전시공간에서는 분단 이전 북녘 유성기 음반에 남겨진 평양 날탕패와 여류 명창의 소리를 감상하고 북한의 문화유산인 봉산탈춤과 평양검무의 기예 등이 담긴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현대 북한 민족음악의 기틀을 마련한 월북음악인(안기옥, 정남희, 조상선, 공기남 등)의 활동을 비롯해 민족가극 ‘춘향전’ 등도 감상할 수 있다. 이들 전시에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장치가 활용돼 음악적 이해를 도울 예정이다.


'공간이음' 가상 투시도.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는 모습. 국립국악원 제공


기획 전시를 중심으로 공연과 학술회의, 특강 등 행사도 마련된다. 개막일인 7일 오후 8시에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기록과 상상’이, 11일에 오후 8시에는 민속악단의 ‘북녘의 우리소리’를 각각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기록물로 남겨진 북한의 음악이 이처럼 무대화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11일 오후 1시 우면당에서는 ‘북한의 민족음악유산’을 주제로 한 제6회 북한 음악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8일부터 10주간 매주 토요일 오후 1시30분 국악박물관 국악뜰에서 전시 관련 특강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립국악원은 ‘공간이음’이 향후 수십 년간 국악계를 포함한 연극·무용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 연구실장은 “북한음악 등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해외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놀이터’처럼 즐길 수 있는 ‘허브’ 같은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