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시대 끝나고 월세 시대, 집없는 사람들 행복해질까

입력 2020-08-06 05:15

정부의 부동산 개혁 입법으로 전세 제도 소멸이 가속화할 것이란 주장이 나오면서 부동산 시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치솟는 가격 때문에 전세 제도는 더 이상 무주택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렇다면 과거 세입자나 집주인 모두에게 환영받던 전세가 이제 와서 시험대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5일 전세 제도의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정들을 정리해봤다.

전세 제도는 197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 정책과 고금리 시장이 맞물리면서 탄생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많은 인구가 도시에 몰리면서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은행 대출에 기댈 상황도 아니었다. 은행 자본이 수출기업에 몰린 탓에 가계 대출 문턱은 높아졌다. 대출에 성공하더라도 10%대 고금리를 감당할 수 있는 가계는 드물었다.

세입자는 목돈을 집주인에게 잠시 맡기는 것 만으로 주거 안정을 꾀할 수 있었던 전세 제도를 택하기 시작했다. 집주인도 목돈을 맡기고 은행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전세금을 지렛대 삼아 갭투자(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전세금을 끼고 집을 매매하는 방식)를 하거나 추가로 집을 구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전세를 비정상적 거래로 여겼다. 이들 국가는 애초에 시중 금리가 높지 않았다. 들끓는 자본 수요로 고금리 시장이 만들어졌던 한국과 대비된다. 세입자나 집주인 둘 다 전세금을 은행에 묵혀두기보다 다른 곳에 투자하는 편이 유리했다. 모든 현금 거래 신고를 의무화하고 높은 세금을 부과했던 것도 해외에서 전세 제도가 안착하지 못한 원인으로 꼽힌다.

전세 제도가 휘청거린 것은 저성장·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부터다. 집주인은 전세로 은행 이자를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무주택자는 주택 매매가격까지 근접해버린 전세 가격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졌다.

전문가들이 현재의 전세 제도를 두고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다만 향후 도래할 월세 시대에 대비해 시장 충격을 완화할 채비를 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전세가 사라질 경우 주거 불안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세 매물이 줄면 서민들은 제 돈으로 집을 살 길이 없어진다”며 “고용불안이 지속되는 경제 상황에서 월세는 과거보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세 제도가 더 이상 세입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전세 가격을 기반으로 한 책정 방식 때문에 월세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전세금을 이용한 무분별한 갭투자로 세입자 중에는 자기 돈도 되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세 거품이 터지기 전에 임차인 보호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주택자의 대출 족쇄를 풀어주는 것도 시장 혼란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전세를 굳이 거치지 않고 자가보유비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원석 중앙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여부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적용한 대출 제한 정책을 지적했다. 그는 “전세 가격이 주택매매 가격에 근접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무주택자는 전세금에 대출만 보태면 바로 주택을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인데도 막상 유주택자처럼 대출이 되지 않는 점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