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어선들이 전 세계 주요 어장들을 돌아다니며 오징어를 싹쓸이해 어족자원을 황폐화시킨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중국 어선들은 오징어의 산란 지역인 해양자원 보호구역까지 침범해 조업하다 현지 국가들과 자주 충돌해왔고, 동해에서도 오징어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북한 어선들이 고기를 찾아 먼바다로 나갔다가 실종되는 ‘유령선’의 원인의 되고 있다.
중국은 뒤늦게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 일부 지역에 한시적 조업금지 조치를 내렸지만, 비난을 일시 모면하려는 생색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농업농촌부는 자국 어선들에게 대서양과 태평양 일부 지역에서 오징어잡이를 3개월간 금지토록 하는 조치를 내렸다. 7월부터 시행된 이 조치는 중국 어선들의 주요 고기잡이 장소인 오징어 산란 장소 등 특정 지역에서 조업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최근 중국 어선 수백 척이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제도의 해양 보호구역 인근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다 에콰도르의 거센 반발을 사는 등 각국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나온 조치로 해석된다.
에콰도르는 중국 어선들이 대규모 선단을 이뤄 조업을 하자 “우리의 해상권을 방어할 것”이라고 중국 정부에 경고했다.
마이크 폼페오 미국 국무장관도 지난 2일 중국 어선들의 갈라파고스 오징어잡이와 관련, 성명을 내고 “중국 어선들이 연안국가의 주권을 침해하고 생태계 파괴를 일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불법적이고, 규제받지 않는 고기잡이, 규칙을 위반하고 고의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 등 (중국 어선들의) 유감스러운 행태에 맞서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어선들은 전 세계 오징어 어획량의 70%를 잡아들이고 있다.
중국 해양아카데미 통계에 따르면, 2018년 600척이 넘는 중국 오징어 배가 52만t 이상의 오징어를 거둬들였다.
중국 정부가 조업 중지 조치를 내린 아르헨티나 인근 남대서양과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인근 해역은 중국 어선들에게 가장 구미가 당기는 오징어잡이 구역이다.
아르헨티나 인근 해상에서도 중국 선박 200척가량이 조업을 해오면서 현지 해안경비대와 잦은 충돌을 빚어왔다.
2016년에는 아르헨티나 해안경비대가 불법 조업중이던 중국 어선 한 척을 침몰시켰으나 그 후에도 중국 선박들은 사라지지 않아 아르헨티나 정부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해군은 올해 초에도 자국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불법조업을 한 중국 선박 2척을 나포하기도 했다.
판원징 그린피스 동아시아 산림해양팀장은 “아르헨티나 해역에서 발생한 사건이 중국의 오징어잡이 금지 조치 이유의 하나로 작용했다”며 “대서양 서남 해역은 중국의 대형 저인망어선들을 포함해 매년 수천 척의 선박이 오징어잡이를 하는데, 수시로 해상 국경을 넘나들면서 분쟁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선박들이 현재 해당 조업 금지 구역을 떠나 태평양이나 다른 공해로 이동했다면서 “중국은 참치, 꽁치 등 다른 종에 대한 보호조치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매년 자국 주변 해역과 남중국해에서 어업 금지 조치를 내렸으며, 공해상의 조업 금지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번 조업금지 조치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잠시 피해가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칭다오 해양보존협회 설립자인 왕쑹린은 “일시적인 조업 금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며 “금지 기간이 끝나고 조업이 재개돼 생태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 남획이 되면 수개월간 어업 금지 효과는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총 어선 수의 축소, 주변의 모든 해양생물을 싹쓸이 하는 트롤어망 금지, 해양보호구역 설치 등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또 북한 주변 동해에서 조업중인 중국 선박들이 오징어를 싹쓸이하면서 북한 어민들이 생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국제 비영리단체 ‘글로벌 어로 감시’(Global Fishing Watch·GFW)는 지난 7월 보고서를 통해 2017년 북·러 간 해상에서 중국 어선 900여 척이 오징어잡이를 위해 나타났고, 2018년에도 700여 척이 해당 해역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 된다고 밝혔다.
이들 선박은 2017년 10만1300t(2억7500만 달러), 2018년 6만2800t(1억7100만 달러)의 오징어를 잡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일본과 한국이 주변의 모든 해역에서 잡을 수 있는 규모라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는 “중국 선단의 대규모 출현은 이들과 경쟁할 수 없는 북한 소규모 어민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북한 연안에 어족자원의 씨가 마르자 북한의 작은 어선들은 제대로 된 항해 장비도 없이 고기를 잡기 위해 더 먼 바다로 나갔다가 ‘유령선’이 되기도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2018년 북한의 ‘유령선’ 505척이 일본 연안으로 흘러들었고, 일부 배에는 먼바다로 나갔다가 굶어 죽은 어부들의 시신이 있었다.
GWF 관계자는 “중국 어선들의 고기잡이 문제는 단순히 환경보전과 보호 차원을 넘어서 심각한 인도주의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