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1~3차장과 기획조정실장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박지원호가 공식 출범했다. 박선원 기조실장의 컴백, 각 차장실의 업무 조정 등의 변화와 함께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김상균 1차장의 유임, 박 원장이 지목한 내부 저항 세력의 존재 등이다. 이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 말 사실상 마지막 국정원장으로 박 원장을 발탁한 배경도 관심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북 문제는 박지원·서훈 투톱 체제로 정비하는 한편 국정원 개혁 완수, 정권 교체기 정세 관리에 조금 더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훈-김상균 라인 주목
박선원 기조실장의 발탁, 국정원 첫 여성 차장의 등장 등 이슈들이 많았지만 눈여겨봐야 될 점은 김 차장의 유임이다. 김 차장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대북 문제를 전담하는 2차장으로 발탁됐다. 서훈 당시 국정원장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번 조직 개편 과정에서 1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업무는? 더욱 확대됐다. 그동안 2차장 담당이었던 대북 업무가 1차장 산하로 재편됐다. 해외 업무에 더해 대북 업무까지 총괄하게 된다. 대신 2차장에게는 3차장 산하 업무였던 방첩, 대테러, 보안, 대공 업무 등이 주어졌다. 3차장은 기존 1급 본부장 업무였던 과학정보 분야를 격상, 담당토록 했다.
결국 정권 초부터 대북 업무를 담당했던 서훈-김상균 체제에 힘이 실렸다는 게 사정당국의 공통된 분석이다. 국정원장에서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서훈 실장과 그의 오른팔인 김 차장이 북한 비핵화 문제를 여전히 관장할 것이다. 대북 전문가인 박 원장도 역할을 하겠지만 기본 뼈대는 서훈-김상균 체제다. 이번 업무 개편 역시 김 차장에게 막대한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인사다.
여기에 박선원 기조실장의 발탁도 눈여겨볼만 하다. 박 실장은 정권 초 주상하이 총영사로 임명됐다. 문재인 대선캠프의 안보상황단 부단장을 맡았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좌천당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낸 뒤 서훈 국정원장의 외교안보특별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선 캠프 안보상황단장이었던 서 원장이 외곽으로 떠돌던 박 실장을 특보로 데려와 역할을 준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서훈-김상균-박선원으로 이어지는 서훈 사단이 갖춰지게 됐다.
문재인정부가 심혈을 기울였던 대북 문제는 미국의 대선, 북 군부의 반발 등이 맞물리며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대북 라인을 모조리 바꾸는 것도, 그렇다고 쇄신을 미루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문 대통령은 박 원장 임명으로 활로를 모색하되, 무게 중심을 서훈 국가안보실장 쪽으로 옮기고 권한을 확대해 기존 체제에 힘을 실어주는 방안을 선택한 셈이다.
국정원 내부 저항 세력
박 원장은 앞선 4일 국회에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만나 “국정원 개혁 방안을 둘러싼 내부 반발이 있다”고 말했다. 권력기관 개편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정부가 벌써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개혁 저항 세력은 누구일까. 서훈 전 국정원장은 취임 후 변호사만 50여명을 고용해 개혁 작업을 벌였다. 국내 정보팀의 해체 등 첨예한 작업들이 국정원법에 저촉되거나 향후 송사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였다. 이렇게 강도 높게 3년을 지냈음에도 남아있다는 개혁 저항 세력이란 다름 아닌 대공 수사 업무 관련자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2018년 1월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력기관 개혁방안을 발표하며 국정원의 대공 수사 업무를 경찰로 이관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에 안보수사처를 신설해 통합관리토록 하는 안이다. 지난달 30일 당·정·청도 회의를 갖고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국정원의 명칭을 바꾸고 국내 정치 참여 제한,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관 등의 내용을 담은 개편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관 규모와 시기다. 조 수석은 2018년 당시 “국정원 인력의 이동 규모와 어떤 직급을 부여할지는 경찰·국정원·행안부가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이 부분이 바로 국정원 내부 저항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민주당이 압승한 지난 총선 이후 국정원 내부에서 대공 수사권 이관에 대한 우려가 크게 확대됐다”며 “이관 작업의 속도가 올라가면서 국정원 직원들이 신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무상 초월적 지위를 지녔던 국정원에서 경찰로 업무가 이관되면 많은 제약이 생기게 된다. 박 원장이 언급한 내부 반발은 이를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공 업무 이관은 문 대통령이 숙명처럼 생각하는 공약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을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권력기관 개혁의 양대 축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 경험이 많은 박 원장이 국정원 개혁을 완수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박 원장은 문재인정부의 일몰을 앞두고 국내외 정세 관리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역대 대통령의 끝이 대부분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외교안보는 물론 국내 현안에 대해서도 연착륙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