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역사는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재학생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창작플랫폼 페스티벌에서 시작한다. 당시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프로듀서인 조형준 실장은 외톨이 소년이 학교를 떠도는 귀신을 만난 뒤 해체 직전의 동네 농구단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끌렸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해 말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소극장인 별무리극장에 오르게 됐다.
지난달 4일부터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한예종,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을 거쳐 민간 제작사인 아이엠컬처의 손에서 재탄생한 버전이다. 한국에서 공공극장이 제작한 창작물을 민간 제작사에서 건네받아 레퍼토리로 만든 첫 사례다. 정인석 아이엠컬처 대표는 “2018년 대학로 공연 당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공공이 제작사라는 한계 탓에 상업화 노하우가 부족했다”며 “민간의 역량이 더해진다면 시너지가 커질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조형준 실장은 “공동제작, 자체제작 등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공공 제작사라는 한계 때문에 지속하기 어려웠다”며 “민간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지속가능성이나 수익확장성이 떨어지는 공공의 공연이 많다”며 “이런 구조가 정착하면 공연계가 선순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확장이 의미 있는 것은 미국과 영국 등 해외와는 달리 지금까지 국내에선 공공의 작품을 민간이 대중화한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공공 제작사 스스로 한계를 짓는 고정관념부터 깨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공 제작사는 해당 지역의 인물이나 특성 등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야 한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이런 한계는 작품 개발에는 용이할 수는 있어도 대중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민간은 공공의 작품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렇다 할 협업도 드물었다. 하지만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은 10여 년간 창작 영역을 국한하지 않고 대중화할 작품에 몰두했고 그 결과 ‘전설의 리틀 농구단’을 만들어냈다.
유연해진 공공과 민간의 숙련된 노하우가 만나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작품을 만들기까지는 당장의 수익을 좇지 않는 공공의 환경이 효율적이지만 1~2년 정도면 예산 투입이 끝나 확장성이 떨어진다. 세금으로 모은 예산을 사용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복잡하고 예산의 투입 가능 여부 역시 매년 불투명해 작품을 정성껏 만들어놔도 지속적인 개발이 불가능했다.
이후의 과정은 민간에서 책임질 수 있다. 민간은 작품이 탄생한 순간부터 레퍼토리 화까지의 상업화 노하우에 최적화 돼 있다. 민간 입장에서는 아무런 수익 없이 작품을 개발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정 대표는 “공공 제작사가 의지를 갖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민간 제작사에 상업화를 맡긴다면 수익은 물론 제작 동기를 강화할 수 있다”며 “민간의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줄이며 양질의 창작 공연을 만들어 낼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 등 해외는 인핸스먼트 계약(enhancement deals)을 통해 공과 민간의 영역이 상생하고 있다. 비영리 제작사에서 개발한 작품을 민간 제작사에서 보완을 거쳐 대중화하고 수익금 일부를 로열티로 제공하는 형태다.
세계적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인핸스먼트 계약 방식으로 상업화에 성공한 대표 사례다. 당초 비영리 단체인 로열 셰익스피어극단에서 제작했는데 이를 캐머런 매킨토시가 기획 및 개발을 맡아 대중화에 앞장서면서 4대 뮤지컬로 발전했다. 현재도 셰익스피어극단에 로열티가 지급되는데 상업 뮤지컬 수익금 일부가 사회에 환원되는 셈이다. 뮤지컬 ‘렌트’ ‘넥스트 투 노멀’ ‘스프링 어웨이크닝’ ‘해밀턴’과 ‘디어 에반 한센’ 등도 인핸스먼트 계약으로 상업화에 성공했다.
한국의 경우 해외 비영리 단체의 공연의 판권을 구매해 상업화한 사례로 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있다. 이 공연은 2014년 3월 스위스의 세인트 갈렌 극장에서 ‘아더-엑스칼리버’라는 제목으로 첫선을 보였다. EMK는 인핸스먼트 계약 형태로 월드와이드 공연 판권을 확보했고 ‘엑스칼리버’로 타이틀을 변경했다. 한국에서 2014년 초연했고 현재 미국의 유료 스트리밍 플랫폼인 ‘브로드웨이 온 디멘드’에서 온라인 상영 중이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작품 개발과 상업화를 맡은 공공과 민간 제작사가 모두 한국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해외와 마찬가지로 아이엠컬처에서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상업 공연의 수익금 일부를 공공 제작사에 환원한다. 지난해만 해도 안산문화예술의전당과 아이엠컬처가 공동제작하면서 투입한 예산 비율로 수익을 배분했지만 올해는 아이엠컬처에서 모든 예산을 집행하면서 로열티 제도로 바꿨다.
정 대표는 “앞으로는 작품의 초기 개발(주제 및 소재, 콘셉트) 과정부터 민간 제작사가 함께 참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며 “그 전에 이런 과정을 위해 시간에 쫓기지 않는 프로세스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