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에서 발원해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베트남을 거치며 주변 지역 6000여만 명의 젖줄 역할을 하는 메콩강이 미·중 갈등의 새로운 전선으로 부상하고 있다.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미국의 조사기관이 메콩강 상류지역에 건설된 11개 중국 댐 때문에 하류 지역 국가들이 가뭄과 물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는 취지의 연구결과를 내놓자 중국도 반박 보고서를 내는 등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물 분야 연구 및 컨설팅 기관인 ‘아이즈 온 어스’(Eyes on Earth)는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메콩강 상류에 있는 중국의 댐들이 470억㎥의 물을 담아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엔의 의뢰로 조사가 이뤄진 이번 보고서는 위성사진과 메콩강위원회(MRC)의 데이터를 근거로 했으며, 메콩강 하류 지역의 물부족 현상이 상류지역 중국 댐 때문이라는 동남아 국가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메콩강 하류 지역 국가들은 중국이 메콩강 상류의 물을 저장해두고 자국의 수력발전이나 관개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방류되는 물이 줄어 하류 지역의 가뭄과 환경파괴를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패트릭 머피 캄보디아 주재 미국대사도 보고서가 나오자 “메콩강의 수량감소 수준과 메콩강 하류 지역 생태계 변화의 주된 원인이 중국 측 상류 댐에서 물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칭화대와 중국 수자원연구소는 7월말 공동 연구 보고서를 통해 메콩강 유역의 가뭄은 고온과 강수량 감소 등 환경적 요인 때문이며 중국 댐들은 우기에 물을 저장하고 건기에 방류함으로써 메콩강 전체의 가뭄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반박했다.
보고서는 또 메콩강 유역의 심각한 가뭄 발생 빈도는 7% 정도이지만 중국 댐이 위치한 상류와 중류 지역의 발생 빈도는 12%로 중국 지역이 더욱 심한 가뭄에 노출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재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스팀슨 센터의 브라이언 에일러 국장은 “메콩강 하류는 우기에도 가뭄이 발생했다”며 눠자두와 샤오완에 있는 중국의 상류 댐이 지난해 7~11월 사이에 약 200억㎥ 물을 담아뒀다는 조사결과를 제시했다.
그는 “이 댐들은 올해도 7월부터 연말까지 비슷한 양의 물을 가둬두려 하고 있다”며 “메콩강 유역의 일부 지역의 수위는 사상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기에 물을 저장했다가 건기에 방류함으로써 가뭄 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주장에도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에일러는 “건기에서 우기로 자연적으로 바뀌면서 수반되는 홍수는 세계 민물고기 어획량의 15~20%를 키우고 하류 지역 국가들의 경제에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했다.
건기에 물을 방류하기 위해 장마철에 물을 가두는 것은 자연발생적인 홍수를 막아 생태계의 흐름을 깨뜨리는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하류 지역 국가의 환경단체들은 물고기 등 수생동물이 산란과 번식을 위해 메콩강과 지류의 상류로 헤엄쳐 올라가야 하는데 인위적으로 수량을 조절하면 이런 사이클도 깨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상류지역의 댐이 장마철에 물을 저장하면 습지로 유입되는 수량을 감소시켜 생태계와 인간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건기에 물을 방류하면 새들이 알을 낳을 수 있는 모래톱에 영향을 주는 등 생태계를 파괴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영리단체인 인터내셔널 리버스의 동남아 담당자인 게리 리는 “메콩강의 11개 중국 댐은 물과 퇴적물, 필수 영양소가 하류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있다”며 “이는 메콩강 하류 지역 국가의 생태계와 수산자원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에일러는 2017년 메콩강위원회(MRC) 연구를 인용 “우기 때 홍수가 연간 80억~100억 달러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반면 피해는 7000만 달러에도 못미친다”며 “자연 흐름이 가져다주는 이익은 (홍수가 일으키는) 피해보다 100배 이상 크다”고 주장했다.
수자원 전문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의 세바스티안 비바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 대립하는 보고서를 내놓는 것은 메콩강이 미·중의 지정학적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