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하는가’ 논쟁 시작됐다

입력 2020-08-03 10:15 수정 2020-08-03 10:42
백신 배분 국제 딜레마…부자 나라 ‘사재기’ 우려
중요 의료진·국가안보 종사자·‘필수’ 노동자 1순위
백신 임상시험 참가자에 혜택 줘야 주장도
‘취약계층 우선이냐, 약효 있는 사람 먼저냐’ 논쟁도
트럼프 행정부, ‘드라이브 스루’ 백신 접종 검토

한 여성이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의 한 국립 보건시설에서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와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자발적으로 참가해 백신 후보군 약물을 주사로 맞고 있다. AP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윤리적이면서 의학적인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누가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프랜시스 콜린스 미국 국립보건원(NIH) 원장은 AP통신에 “자신이 가장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복잡한 상황을 설명했다.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와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가 지난주 3만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다국적 기업 존스앤드존슨, 미국 제약사 노바백스도 대규모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도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P통신은 “코로나19 백신을 누가 먼저 맞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됐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백신의 배분과 배포에 대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와 고민을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부자 나라 ‘사재기’ 걱정

백신의 배분은 국제적 딜레마라고 AP통신은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특히 부자 나라들이 먼저 나서서 코로나19 백신을 사재기할 경우 WHO는 더욱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미국에선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의 면역업무자문위원회가 어떤 사람들에게 백신을 언제 맞혀야 하는지를 권고했고, 미국 정부는 이를 항상 따랐다.

그러나 코로나19 백신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미국 정부에 조언해줄 것을 미국 의회가 승인한, 미국 국립의학학회의 윤리학자와 백신 전문가들도 코로나19 백신의 배포에 대해 자문을 해줄 것을 요청받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CDC의 로버트 레드필드 국장은 백신 할당에 대한 원칙을 제시했다. ‘공평하고, 공정하며,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 두 번 맞아야 할수도…수량은 더 부족해져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당분간 세계적인 수요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수량 부족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있다.

AP통신은 가장 잠재력이 큰 백신은 두 번 맞아야 효과가 있다고 보도했다. 1억회 분량의 백신이 있어도 5000만명에게만 약효가 있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백신은 보건 의료진과 그 질병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먼저 맞아왔다. 콜린스 NIH 원장은 여기에다 지역의 개념을 추가했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친 지역의 사람들도 우려 고려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주 용커즈에 위치한 세인트 요셉 병원의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지난 지난 4월 2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막기 위해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근무하는 모습. AP뉴시스

‘중요한 의료진·국가안보 종사자·필수 노동자’가 가장 먼저 맞는다

미국 CDC가 현재까지 내놓은 제안은 대략 이렇다. 가장 먼저 백신을 맞는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의료진, 국가안보 종사자, ‘필수(essential)’ 노동자들이다. CDC는 이들을 1200만명으로 추산했다.

두 번째 대상은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다. 65세 이상으로 장기요양시설에 머무는 노인들, 나이와 상관없이 질병이 있거나 건강이 좋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 계층은 약 1억 1000만명에 달한다. CDC는 필수 노동자들을 두 번째 대상군에도 중복 포함시켰다.

일반인들은 이들에 이어 세 번째 대상이 될 전망이다.

밀집된 환경에 살면서 의료시설 접근이 힘들고, 다른 미국인들처럼 직업적으로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도시 빈민들도 코로나19 백신을 먼저 맞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사람 중에서 비교 연구를 위해 약효가 없는 백신 물질을 맞았던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누가 필수 노동자냐…논쟁 본격화

그러나 논쟁은 끊이질 않는다. 코로나19 치료시설에 있는 의료진들은 보통 최고의 보호를 받는 반면, 일반 의료진들은 위험상황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필수’ 노동자들의 구분도 애매모호하다. 예를 들어, 닭고기 공장 노동자와 학교 선생님이 필수 노동자에 포함되는지 여부도 논쟁거리라고 AP통신은 지적했다.

백신의 효과를 둘러싸고도 반론이 나온다. 질병이 있거나 건강 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취약 계층의 백신 투약 효과가 젊은 층이나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 약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에도 취약 계층에 먼저 백신을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면역 체계가 활발하지 못한 노인들에 대해 코로나19 백신을 먼저 투약한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우려가 나온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논쟁들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한 빨리 백신을 개발하고 배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펼치고 있다.

백신이 개발될 경우 ‘드라이브 드루’ 백신 접종, 임시 진료소 설치 등의 아이디어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나온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