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크놀로지그룹(한국타이어)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경영권 다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한정후견개시심판이 청구됐던 롯데그룹의 형제간 분쟁 때와 닮은 듯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은 지난 6월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주식 전량을 매각했다. 이에 조 사장은 지분율 42.9%로 그룹 최대주주가 됐고, 사실상 후계구도를 굳혔다. 이때만 해도 다툼 여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형제의 난’ 가능성에 불이 붙은 건 조 회장의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지난 30일 한정후견개시심판을 서울가정법원에 청구하면서다. 한정후견은 질병,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때 법원 결정으로 선임된 후견인을 통해 보호받게 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조 이사장 측은 “조 회장님은 평소 주식을 공익재단 등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셨다. 사후에도 지속 가능한 재단의 운영방안을 고민하고 계셨다”며 의구심을 내비쳤다. 아버지 조 회장과 조현범 사장 사이에 성사된 주식 매각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는 롯데그룹의 형제간 분쟁 당시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정신건강 문제가 떠오른 것과 비슷하다. 2015년 12월 신 명예회장의 넷째 여동생 신정숙씨는 94세의 고령인 오빠의 정신건강에 이의를 제기하며 성년후견인 지정을 요청했다. 차남 신동빈 현 롯데그룹 회장과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갈등이 상황에서 법원은 신 명예회장에 대한 한정후견인을 지정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타이어의 경우 조 회장이 지난 31일 입장문을 내고 즉각 사태 수습에 나섰다. 조 회장은 “조현범 사장에게 약 15년간 경영을 맡겨왔었고,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해 이미 전부터 최대주주로 점찍어뒀다. 갑작스럽게 결정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자신이 건강하다는 점과 재산 환원 등에 대해서도 명확히 언급했다.
롯데그룹 때와는 달리 지배구조가 뚜렷한 것도 다른 부분이다. 조 부회장(지분율 9.32%)과 조 이사장(0.83%), 차녀 조희원씨(10.82%)가 연합해도 조 사장의 지분율(42.9%)을 넘기 어려워 경영권을 흔들긴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국타이어의 경영권 분쟁은 조 회장이 직접 대응에 나선 점, 지분율 차이가 크다는 점 등을 봤을 때 별다른 변수가 없으면 초기 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