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유동성 확대할 수록 달러 하락 악순환 위기
<최근 10년간 달러 인덱스 추이>
<자료:네이버금융, 뉴욕증권거래소>
코로나19 펜데믹 엄습으로 지난 3월 미국 달러화가 보여준 위력은 명불허전이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자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하자 미 연방준비제도에 통화스왑을 요청하고 나서는 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 재연됐다. 유로, 엔,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주요 6개 통화와 비교한 달러 인덱스는 3월 19일(현지시간) 103.60으로 최근 10년래 최고치를 보였다.
그러나 4개월 남짓 지난 현재 미 달러화는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그것도 급경사를 타고 있다. 7월 한달간 달러 인덱스는 4.1%나 떨어지면서 2010년 9월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을 보였다. 지난달 30일 달러 인덱스가 그간 유로존 재정위기 마무리 국면인 2014년 7월 이래 형성된 하락 지지선 94가 깨진 93.00을 기록하면서 90선 붕괴도 시간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축통화로서의 위상 추락과 함께 달러 신용 붕괴를 예고하는 전조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오는 등 달러 향방이 전세계 금융시장에 초미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 연준 등의 유동성 확대에 힘입어 주식 등 위험자산 선호 현상을 보였다. 2일 유진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민감 통화로 통하는 호주달러는 엔화 대비 지난 3개월간 7.6% 상승했다. 경제성장과 밀접한 구리가격도 같은 기간 23.4%나 오른 점이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최근 한달간 달러 가치 급락에는 이처럼 단순한 위험자산 선호 현상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요인들이 담겨 있다. 최근 코로나 관리 등을 둘러싼 미국의 위상추락과 함께 늘어나는 유동성 공급에 따른 정부부채 상황 등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6월 이후 유럽은 코로나 감염 확산세가 줄어들고 실물경제도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점도 달러에 충격을 주고 있다는 진단이다. 7월 마킷 조사결과 서비스업 구매자관리지수(PMI)가 미국은 50미만인 49.6에 그친 반면 유럽은 25개월래 최고치인 55.1을 기록했다.
미국은 여야가 부양책을 놓고 분열된 반면 유럽은 최근 8년만에 경제회복기금 조성에 합의하는 등 단결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반영한 듯 유로화 가치는 최근 한달간 10%나 상승했다. 지난주 10년만기 미 재무부 채권의 실질 금리가 10년 만에 마이너스 1%로 최저치를 기록한 것은 코로나 감염확산에 따라 연준의 유동성 공급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를 담고 있다.
문제는 유동성 확대는 이제 경기부양이라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달러 가치의 추가 추락을 점점 더 부추기는 부정적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미 정부 부채 확대 등 수면아래 가라 앉았던 요인들도 부정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지난 31일 영국의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정부부채문제를 지적하며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11월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미루자는 내용의 트윗을 날린 점은 달러 위상 추락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이런 태도로 볼 때 그가 과연 대선 패배도 승복할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부상중이라는 것이다.
금값이 고공행진을 보이는 것도 투자자들이 더 이상 달러화를 금과 같은 동급의 안전자산으로 보지 않기 시작했거나 달러의 이른바 ‘준비통화(reserve currency)'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평가다. 준비통화는 각국 중앙은행이 대외지급을 위해 보유하는 통화로 달러와가 68%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유로화와 위안화 비중은 아직 각각 28%, 2%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아직은 40년여 유지해돈 미 달러 페그제 시스템이 붕괴되거나 달러가 궁극적으로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내려놓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신현송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FT에 “지난 3월 신용패닉 당시 달러화가 보여준 신용안정 기능을 감안하더라도 아직 이를 대체할 국제통화 등장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달러의 급격한 약세로 그동안 미국 주식시장에 기울어진 투자가 신흥국으로 무게를 옮아 갈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국제원자재에 투기 수요를 부추기면서 인플레이션을 급격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대외거래 비중이 높은 한국은 원·달러 환율 약세로 인해 가뜩이나 코로나로 급락한 수출실적에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