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력에 의한 성폭력, 가해자가 없으면 피해자도 없습니다”
국회페미가 8월 한 달간 ‘위력에 의한 성폭력 근절 캠페인’을 연다고 31일 밝혔다. 국회페미는 성평등한 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 여성 근로자들이 결성한 단체다.
국회페미의 세 번째 캠페인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 등 최근 유력 정치인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연달아 폭로되자 정치권의 성인지감수성과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마련됐다. 국회페미는 “조직 전체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피해 사실, 복지적 관점에서 풀어야 할 ‘여성의 일’ 정도로 축소하고 여성 의원들에게 책임과 해결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페미는 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국회페미는 “국회가 성별에 기반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채용하고 직무를 맡아 평가하는 구조였다면 더 많은 여성이 능력을 발휘해 보좌관까지 올랐을 것”이라며 “여성의 역량과 발언권을 제한해 약자의 위치에 가두는 조직문화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결하려면 공통적으로 채용 및 승진 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국회페미는 정치권의 계속되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현실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여성 보좌진 35명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을 진행했다. 다수의 응답자가 “이래서 여비서는 뽑으면 안 된다” “성폭력이 아니라 불륜이다” “정치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등의 공공연한 2차 가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근본 원인으로 응답자들은 공통으로 인맥으로 이뤄지는 성차별적이고 불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꼽았다. 인사 권력을 대물림하면서 여성 보좌진은 불합리한 상황이 닥쳐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주장했다.
한 응답자는 “국회 비서실은 대부분 별정직 공무원으로 채워져 인사권을 남성권력이 쥐고 있는 상황은 비슷하다”며 “정치권에서 남성과 남성이 서로를 끌어주고 보호하는 잘못된 문화가 있기 때문에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여성 보좌진은 “채용 시 상대적으로 여성 지원자의 경력과 자질이 더 뛰어났지만 보좌관이 남자를 뽑으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며 “관례적으로 여성은 인턴과 9급만 뽑아 허드렛일을 시키고 4급부터 8급까지는 남성만 뽑는다”고 주장했다.
국회페미는 일터로서 성평등한 국회를 만들어야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민의의 전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가치 아래 여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여성에게 사무실 허드렛일을 강요하는 전근대적 관행을 지적한 ‘커피는 여자가 타야 제맛입니까?’, 극심한 유리천장 실태를 고발한 ‘여자는 보좌관 하면 안 되나요?’ 캠페인을 실시했다.
지난 12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제작한 박 시장 추모 현수막 철거를 촉구했다. 국회페미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이 제작한 추모 현수막이 2차 가해를 유발하는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내용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며 “피해자를 모욕하고 고통을 주는 명백한 2차 가해이자 박 시장의 성폭력 피소 사실을 부정하고 시민들에게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집권 여당으로서 민주당이 우선순위에 둬야 했던 일은 2차 가해 현수막을 내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향하는 것을 막는 일”이라며 “엄중한 시국에 전례 없는 서울특별시장(葬)과 시민분향소 운영을 추진하고 공식 일정을 줄줄이 취소하며 권력자는 모든 것의 예외가 될 수 있다고 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