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사람 죽이는 ‘일’을 할까.’ 배우 황정민이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암살자 인남을 만들며 가장 먼저 한 고민이다. 극 속 인남의 피폐함은 대본을 읽는 황정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암살자라는 직업이 인남의 삶을 얼마나 갉아먹고 있는지 제대로 표현하는게 핵심이었다.
영화 ‘교섭’ 촬영으로 요르단에 체류 중인 황정민은 서면을 통해 캐릭터 인남이 탄생하기까지의 순간을 설명했다. “인남은 암살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면 자신의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셈입니다. 하지만 그가 미션을 완료했다고 뿌듯하다거나 보람을 느끼는 지점을 표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암살자라는 직업을 너무도 괴로워하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고 그게 캐릭터 분석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다음달 5일 개봉하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과 그를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이정재)의 처절한 추격과 사투를 그린 하드보일드 추격액션 영화다.
태국에서 벌어진 섬뜩한 납치사건을 추적하다 보면 그 끝에 두 남자가 엉켜있다. 인남과 레이. 암살자 인남은 자신의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살해한 마지막 암살 대상은 레이의 형이었고 레이의 무자비한 추격은 이미 시작됐다.
-오랜만에 액션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그저 대본이 재미있었습니다. 쉽게 술술 읽혔습니다. 대본을 받았을 당시 왠지 관객에게 신나는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영화보다 액션으로 쾌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선물 같은 영화를 찍고 싶었습니다. 그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였습니다.”
-하드보일드 추격 액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느와르 장르 ‘신세계’와 어떻게 다른가
“2013년 개봉했던 ‘신세계’는 사실 액션 이라고 할 만한 장면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번 영화는 말 그대로 하드보일드한 액션이 주를 이룹니다. 액션 양이 기존에 해왔던 ‘베테랑’ 등 작품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액션 장면 촬영하면서 힘들지 않았나
“액션 영화를 찍게 되면 몸도 만들어야 되고 체중 및 체형 유지도 잘 해야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습입니다. 그래야 나와 상대방 모두 다치지 않습니다. 부상을 막기 위해 항상 철저히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런 중압감이 남달랐습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한 간절함을 연기하기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물론 아이를 구출하려는 것도 확실한 미션이었지만 인남의 감정 연기는 영화 속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복합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이를 구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인남 자신을 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지금 잘못돼가고 있는가, 이미 잘못된 인생을 돌이킬 수 있는가’를 인남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돌이킬 수도 없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계속 반성하고 있던 차에 아이를 구하면서 ‘나를 구할 수 있다’라는 목표가 생긴 겁니다. 그만큼 인남한테는 아이라는 존재가 희망적인 삶의 존재였습니다.”
-이정재와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재회했다
“너무 좋았습니다. ‘신세계’가 끝나고 다시 한번 함께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와서 좋았습니다. 워낙 과격한 액션 장면이 많아서 ‘절대 다치지 말자’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신세계’에서 호흡을 맞춰와서 합이 아주 잘 맞았습니다.”
-베일에 싸여있던 박정민이 연기한 유이 캐릭터는 어땠나
“우리의 비밀병기입니다. 현장에서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였고 유이 역이 작품의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박정민 배우가 워낙 연기력이 뛰어나고 감각도 훌륭합니다. 선배로서 무한 신뢰를 갖고 있습니다. 꼭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인남의 조력자 역의 박정민의 가장 큰 장점은
“평소에 말이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이나 일상에서 보면 상식이나 지식이 많고 준비를 철저히 해옵니다. 영화 현장에서 별로 말도 없고 조용하다는 것은 사전에 캐릭터 준비를 잘 해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 부분이 가장 큰 그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최희서, 박명훈, 오대환 등도 눈 여겨 볼만 한데,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최희서 배우와 박명훈 배우는 이번에 처음 작업을 했는데 아주 훌륭했습니다. 아마 영화를 본 모든 관객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영화는 단 한 명도 연기에 구멍 난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태국에 계신 엑스트라까지 모두 연기를 잘했습니다. 서로 각자 자리에서 너무 잘 해줘서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이례적으로 영화 홍보를 위한 예능 출연이 잦았습니다.
“배우가 자신의 영화를 홍보하는 데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실 요즘은 예능이 아니면 홍보할 데가 없기도 합니다. 제가 예능에 나오면 ‘아 황정민이 출연하는 영화가 곧 개봉하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실거고 그러면서 한번 영화 정보를 찾아보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관객이 극장으로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봉을 앞둔 소감은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사실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영화계를 비롯해 사회 전반이 힘든 상황입니다. 우리 영화를 포함해 모든 영화가 잘 돼서 활력이 생기길 바랍니다.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며 해소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시원한 여름 영화로 보답하겠습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