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연기’ 9시간만에 입장 바꾼 트럼프…“우편투표 조작 가능성 낮아“

입력 2020-07-31 11:00 수정 2020-07-31 11:0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예정된 대선을 연기하는 방안에 대해 언급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고 이를 철회했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도 “하지 않았어야 할 말”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로이터 통신 등은 30일(현지시간) 오후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선거와 결과를 원한다”면서 “나는 연기를 원치 않는다. 선거를 하길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9시간 전인 이날 오전 자신의 트윗 계정에 “우편투표는 ‘사기치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사람들이 적절하고 안전하고 무사히 투표할 수 있을 때까지 선거를 미룰까”라고 올렸다.

해당 발언에 대해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도 공개적으로 비판에 나서자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긴급히 상황 수습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개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달을 기다린 뒤 투표지가 모두 사라져 선거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싶지 않다”면서 “이것이 일어날 일이고 상식이다. 영리한 사람은 알지만 멍청한 사람은 알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흑인 인종차별 문제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재선 성공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는 가운데 대선 연기를 거론한 데 대해 미 정치권에선 경솔했다는 평가와 함께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를 훼손하려 한다는 거센 비난이 일고 있다.

공화당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는 “연방 선거 역사상 전쟁과 공황 중에도 선거를 미룬 적은 없다”면서 “우리는 11월 3일에 예정대로 선거를 진행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親)트럼프 인사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역시 대선 연기에 대해 “좋은 생각이 아니다”고 말했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우편투표의 조작 가능성에 대해 최근 팩트체크를 실시했다”면서 “전문가들은 우편투표와 부재자 투표는 본질적으로 같으며, 미국 선거에서 광범위한 조작도 없었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우편으로 배달된 투표용지를 각 주 정부가 추적할 수 있으며 투표용지에 적힌 서명과 당국이 보관 중인 문서의 서명을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조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이 지난 20년간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적발된 범죄 사례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유죄 판결을 받은 건수는 143건으로 총투표수의 0.00006%에 불과했다.

매체는 “대통령이 대선 날짜를 바꿀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의회의 승인 없이 바뀔 수는 없다”고도 전했다.

미 언론들은 대선 연기를 거론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그가 선거를 무력화시킬 방안을 찾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자충수라고 풀이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트윗은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를 방해하거나 실패 결과를 받아들이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민주당의 두려움을 심화시킬 것”이라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나길 거부할 경우 군 병력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으로부터 역풍에 직면하자 단지 우편투표의 문제점을 부각하려는 것이라고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그는 우편투표 옵션을 재선의 가장 큰 위험이라고 불렀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를 괴롭히는 인사가 됐다”면서 “지도자들을 결집시켜 경제 및 보건 위기 대응력을 높이는 대신, 의심만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