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시기에 ‘제주 람사르습지도시위원장’ 사퇴

입력 2020-07-30 15:15 수정 2020-07-30 15:18

최근 제주에서 민간인 람사르습지도시위원장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사퇴 외압 조사를 요청했다. 외압 뒷배경으로 제주도정과 원희룡 제주지사가 언급되는 가운데 도내 주요 환경단체들이 ‘정치 사찰’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제주에서 람사르습지도시 지역관리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두고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제주도정이 추진하는 각종 개발 현안에 대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반대 의사를 표하는 위원장을 행정이 불편하게 여겨 사퇴를 사실상 종용했다는 것이다.

의혹은 꽤 구체적이다. 동물테마파크 사업 추진을 놓고 찬반이 대립하는 제주시 조천읍 관내 일부 마을 찬성 임원진과 제주도청 간부가 원희룡 제주지사에 습지도시위원장의 정치적 활동에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고, 원 지사가 위원회 규정을 바꿔 위원장 교체를 지시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문제는 제주도가 오는 9월부터 제주시 조천읍 람사르습지도시 지역관리위원회에 새로운 공식 규정을 적용해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불거졌다. 새 규정안은 현재 환경단체 인사가 단독으로 있는 위원장 직을 공무원이 공동으로 맡고, 앞서 조천읍이 추천한 위원들을 제주시장이 새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위원회를 통째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고제량 습지도시위원장은 “제주도가 위원회 운영 규정을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시점에 의문이 든다”고 했다.

고 위원장은 새 규정에 따라 위원회가 출범하더라도 기존 위원 승계와 위원장 임기 보장을 요구했지만 제주도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고 위원장은 “위원장이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정당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며 “제2공항과 동물테마파크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제주도가 권한을 침해한 부분이 없는지 인권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도내 주요 환경단체들도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곶자왈사람들, 제주참여환경연대, 제주환경운동연합은 29일 공동 성명을 통해 “습지 보전을 위해 만들어진 람사르습지도시위원장이 난개발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위원장의 사퇴 압력 배경에는 동물테마파크에 반대 의견을 밝힌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희롱 제주지사는 공개 사과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치 사찰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이처럼 논란이 커지는 것은 제주 제2공항과 동물테마파크가 갈등이 첨예한 지역 최대 현안 사업이기 때문이다. 수년전부터 추진 논의가 시작됐지만 대규모 토지를 개발하는 사업인 만큼 반대 여론이 높아 진척이 더뎌 행정에는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동물테마파크는 람사르습지도시 지역관리위원회가 활동하는 제주시 조천읍 일대에 사업 예정지를 두고 있다.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이번 사태는 제주도정이 간접적으로 동물테마파크 사업을 옹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제주도는 “위원회가 명문화된 부분이 없어 지난해부터 습지 보전 관리 조례 개정을 추진해왔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한편 제주도는 동백동산 습지가 있는 제주시 조천읍 일대에 대한 람사르 습지 도시지역 인증을 추진하면서 지난 2015년 마을 주민과 전문가, 환경단체, 행정이 참여하는 지역습지관리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2018년 조천읍은 제13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세계 최초로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받았다.

제주동물테마파크는 대명그룹 산하 ㈜대명티피앤이가 2023년까지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58만㎡에 사파리형 동물원과 숙박시설을 조성하려는 사업이다. 지난 4월 제주도 환경영향평가 변경심의위원회를 조건부 통과해 현재 도의 변경승인 고시만 남은 상태다. 그러나 사업 승인 전 마을 전 이장이 사업자로부터 3억5000만원의 발전기금을 입금 받아 반대측으로부터 횡령 등 혐의로 고발되고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는 등 사업 추진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측 간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