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되기 싫다”는 트럼프…주독미군 빼는데 수조원 ‘펑펑’

입력 2020-07-30 06:48 수정 2020-07-30 07:20
1만 2천명 주독미군, 미국과 유럽지역 재배치
트럼프 “독일 돈 안 내…호구되는 것 원치 않아”
에스퍼 장관 “주독미군 재배치에 수십억 달러 들 것”
돈 문제로 주독미군 빼면서 천문학적 비용 지출 논란
미군 주둔 원하는 국가에 일부 비용 전가 가능성 높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미드랜드에 위치한 ‘더블 이글 에너지’의 석유 굴착 시설을 방문해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정부가 29일(현지시간) 독일 주둔 미군 약 1만 2000명을 미국과 유럽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주독미군 재배치가 돈 문제였음을 분명히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은 방위비를 내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더 이상 호구가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 모순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이날 국방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주독미군 재배치 계획을 발표하면서 “분명하게 현재까지 (재배치) 비용은 추산치지만, 수십억 달러(수조원)이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이 충분한 방위비를 내지 않는 데에 화가 난 트럼프 대통령이 수십억 달러의 돈을 쏟아 부으며 주독미군을 감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주독미군의 러시아 견제 등 군사적 역할을 차치하더라도, 비용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돈 문제로 독일과 갈등을 빚어 주독미군을 빼는데, 이 작업 과정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에스퍼 장관은 주독미군 재배치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으로 복귀하는 주독미군의 재배치 비용은 미국 정부가 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배치를 원하는 나라에 비용 일부를 전가시킬 가능성도 높다. 트럼프 대통령과 절친한 폴란드의 안제다 두다 대통령은 지난 6월 24일 백악관에서 열렸던 미국·폴란드 정상회담에서 주독미군 일부가 폴란드로 재배치될 경우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에스퍼 장관은 주독미군 1만 2000명을 빼 미국으로 6400명을 복귀시키고, 유럽의 이탈리아와 벨기에에 5600명을 재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군의 유럽사령부도 독일에서 벨기에로 이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 AP뉴시스

이에 따라 주독미군은 현재 3만 6000명에서 2만 4000명으로 줄어든다. 주독미군의 3분의 1을 감축하는 것이며, 당초 알려졌던 9500명 감축보다 더 큰 규모다.

에스퍼 장관은 미국으로 복귀하는 주독미군의 일부는 순환배치의 형식으로 폴란드와 발트해 국가들, 그리고 흑해 주변 국가들로 다시 배치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독미군의 재배치가 계획대로 완료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따른다. 에스퍼 장관은 “일부 주독미군 재배치는 몇 주 뒤에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머지 병력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국방부 당국자는 AP통신에 재배치가 완료될 때까지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독미군 재배치 결정이 돈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원인이 됐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들(주독미군)은 유럽과 독일을 보호하기 위해 그곳에 있다”며 “독일은 돈을 내야 하지만, 돈을 내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이 돈을 내지 않는다면 왜 그들을 남겨놓아야 하느냐”며 반문한 뒤 “우리는 더 이상 호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에 대해 ‘빚을 갖지 않는다(delinquent)’이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썼다. 그는 이어 “우리는 독일에 많은 돈을 썼다”면서 “그들(독일)은 무역과 군에 대해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병력을 감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이 만족할만한 방위비를 지불한다면 주독미군 감축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독일)이 청구서를 지불하기 시작한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