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모두 합쳐 시가총액 5조달러(약 6000조원)에 달하는 기업을 운영하는 최고경영자(CEO) 4명이 29일(현지시간) 미 의회 반독점 청문회에 나란히 출석한다. 1998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나왔던 반독점 청문회 이래 최대 규모의 청문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CNN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온라인 시장 독점 및 지배력 남용 의혹을 받고 있다. 아마존은 입점 업체들에 대한 처우와 판매자 데이터 활용, 애플은 앱스토어 운영 정책, 페이스북은 경쟁 업체 인수 관행, 구글은 검색 광고 시장 지배력과 관련해 연방정부 및 주정부 규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미 하원 법사위 산하 반독점 소위는 지난해 6월부터 이들 4개 기업에 대한 조사를 벌여왔다. 소위는 이번 청문회를 끝으로 그간의 조사 내용을 종합해 온라인 시장 경쟁 활성화 법안을 만들 방침이다.
IT 업계 역사에 남을 청문회를 앞두고 4개사가 발표한 성명과 CEO 발언 요지는 대체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부각하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자사 제품과 서비스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고, 수많은 기업인과 중소기업을 도왔으며, 미국인의 삶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저커버그는 ‘중국 경계론’을 펼 것으로 보인다. 그는 페이스북이 외국 업체들과 경쟁하는 미국 기업임을 강조하며 “미국 기업을 가로막는 건 중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높여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더 나은 상품을 제공하는 미국식 성공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저커버그의 멘토로 알려진 빌 게이츠는 1998년 인터넷 익스플로러 브라우저를 윈도95에 끼워 팔아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상원 청문회에 불려나가 추궁을 당했다. 당시만 해도 워싱턴 정가와 별다른 교류가 없던 그는 “미 법무부가 폭거를 벌이고 있다”고 반발했는데, 답변 도중 진땀을 흘리거나 어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게이츠는 청문회를 교훈 삼아 의회와의 관계 설정 등 정치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8년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저커버그는 게이츠가 “20년 전 내 실수로부터 배우라”고 조언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가짜뉴스 및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곤혹을 치렀던 저커버그는 청문회를 비교적 무사히 치렀다. 당시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은 어떻게 돈을 버느냐’는 질문에 “의원님, 우리는 광고를 운영합니다”라고 답한 장면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의 황당 질문은 한동안 SNS에서 조롱 대상이 됐다.
이번 청문회의 최대 관심은 청문회가 처음인 아마존의 베이조스다. 세계 최고 부호인 그가 대본 없이,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보는 건 매우 드문 일이라고 CNN은 전했다. 아마존이 공개한 모두발언에는 베이조스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창업 초기 일화 등이 길게 담겼다고 WP는 전했다. 베이조스는 WP도 소유하고 있다.
당초 청문회는 27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 존 루이스 민주당 하원의원의 추도식과 겹쳐 날짜가 조정됐다. 코로나19 여파로 화상 회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