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목사
서울 마라나타 교회
본문 : 요한복음 20장 1~31절
안식일이 끝나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제일 먼저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낸 후 유월절 안식일을 무슨 정신으로 지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 입구의 돌이 옮겨져 있는 것을 보고 막달라 마리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시체까지 가지고 가서 옮긴 것은 아닐까? 험한 일을 당한 후라 유대인들이 무슨 일을 못하겠나 싶습니다.
그래도 믿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니 마리아는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방금 자기가 본 사실을 보고합니다.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로 먹먹하게 모여 앉아 있던 제자들 중 그 말을 듣자마자 둘이 정신없이 무덤까지 달음질해서 가보았습니다.
그때 달려갔던 제자는 베드로와 이 글을 쓴 요한입니다.
요한은 그때 그 자리에 있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정황들을 본대로 아주 사실적으로 기록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착각도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건은 진실입니다.
부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해 주셨지만 아무도 부활이 무엇인지를 한번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익숙한 것은 쉽지만 처음 보는 것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이상하다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떠나간 후에도 그 자리를 계속 지키던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죽기 전의 예수님이 죽은 후에 다시 살아서 눈앞에 보이게 서 계셨는데도 마리아는 그 분이 예수님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실 때 마리아는 그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마리아야” 자기를 부르시던 예수님의 소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실때의 그 느낌은 목소리의 파장이 세포 속으로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서 생명 있게 일으켜 세우시던 파워 였습니다.
낙심하고 힘들때도 언제나 “마리아야” 라고 자기 이름을 부르시던 예수님의 소리를 들으면 새로운 힘과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 음성을 예수님이 아니면 누가 낼 수 있을까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음성입니다.
부활이 무엇인지를 이해한 마리아는 이제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보고합니다.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습니다!”
마리아가 흥분해서 아무리 자기가 본 예수님을 설명해도 아직 부활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한번도 본적 없는 부활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날 저녁,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굳게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분위기가 더 살벌해졌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지금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런 그 곳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분명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의 예수님이 맞습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공포와 미움으로 가득한 제자들 앞에 그분이 다시 살아나셔서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제자들은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이제 부활을 이해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속에 떨고 있던 제자들 앞에 죽으신 예수님이 살아나신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 이곳에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평강과 죄사함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으니 이제 용서하면 사함 받은 그 죄는 없어질 것입니다.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용서하면 소멸되는 죄! 십자가의 완성은 용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소멸시킨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과연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용서함으로 그 죄를 세상에서 영원히 없앨 수 있을까요?
“성령받으라” 그 말의 여운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