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 관리단체 지정…선수·가족 “정상화 기대”

입력 2020-07-29 14:42 수정 2020-07-29 14:56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가운데)이 29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36차 이사회가 끝난 뒤 대한철인3종협회의 관리단체 지정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동환 기자

대한체육회가 철인3종 선수 고(故) 최숙현 죽음에 책임이 있는 대한철인3종협회를 관리단체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철인3종협회는 모든 권리를 상실하고 체육회가 지정한 관리위원회가 협회 운영을 대신한다. 철인3종 선수와 가족들은 관리단체 지정을 반기며 한 목소리로 협회 정상화와 폭력 사건 재발 방지가 이뤄지길 기대했다.

대한체육회는 29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36차 이사회에서 긴급 안건으로 철인3종협회 관리 단체 지정에 관해 심의했다. 이사회 직후 이기흥 회장은 “철인3종협회를 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하기로 했다. 고 최숙현 사안으로 인해 책임 소재를 더 분명히 하자는 의미”라며 “철인3종협회 내부 문제점을 소상히 살피고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 최숙현은 경주시청 철인3종 팀에서 뛰는 동안 줄곧 김규봉 전 감독, 주장 장모씨, 팀닥터 안주현씨 등에 가혹행위를 당한 뒤 지난 2월부터 철인3종협회 등 공식 기관에 피해를 호소했다. 하지만 협회는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최숙현은 지난달 26일 세상을 떠났다.

체육회 관리단체운영규정에 따르면 최숙현 죽음에 책임이 있는 철인3종협회는 기존의 모든 권리와 권한이 중지되고 체육회가 구성하는 관리위원회가 전반적인 협회 업무를 관장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존 철인3종협회 임원진도 모두 해임된다.

철인3종경기 실업팀 선수들이 29일 대한체육회 이사회가 열리는 송파구 올림픽파크텔 앞에서 대한철인3종협회 강등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이사회 직전엔 현재 체육회 인정단체인 철인3종협회의 ‘준가맹단체’ 강등 가능성도 제기됐다. 강등될 경우 체육회가 지급하는 인건비나 경기력 향상지원금 등이 크게 줄어들게 돼 철인3종 선수 가족과 지도자들은 그 영향이 전국체전 정식종목 제외나 실업팀 해체 등으로 이어질 걸 우려했다. 이에 이사회장엔 3~40명의 선수와 가족 등이 방문해 “준가맹단체 강등은 폭력 피해자들에게 운동할 곳을 뺏는 것”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 이사회는 이런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예산 축소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관리단체 지정 결정을 내렸다. 이 회장은 “준가맹단체가 되면 여러 불이익을 받아 선수 진로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고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철인3종협회 상급기관인 체육회도 사건 방조의 책임에서 자유롭진 않다. 이에 이 회장은 “조직문화를 바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이사회에선 피해자 선제적 보호 및 가해자 엄중 징계, 스포츠 인권 감시체제 운영, 합숙훈련 허가제 도입, 인권교육 강화 등 스포츠 폭력 추방을 위한 다양한 수습 방안들도 함께 논의됐다.

고 최숙현 아버지 최영희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숙현이 죽음으로 선의의 피해 선수들이 생길까봐 우려했는데 관리단체 지정은 최선의 결정”이라며 “체육회도 책임이 많기에 관리위원회가 빠른 시일 안에 협회를 정상화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이사회장에 방문한 선수·지도자들은 관리단체 지정을 반기며 폭력 사건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길 기대했다. 경주시청 피해 선수 A씨는 “체육회에서 선수들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길 바란다”며 “저희 말고 다른 피해자들도 많은데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숙현법 통과 등을 통해 선수들의 피해 호소가 빠른 조치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실업팀 감독도 “죄 없는 선수들이 피해 받을 수 있는 준가맹단체 강등만은 피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이사회장에 나왔다”며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숙현이 죽음에 책임을 통감하고 현장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