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경쟁업체에 넘겨 3억원대 과징금을 부과 받은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해 기술유용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사건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유용 근절을 선언한 이후 적발했던 첫 사례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6부(부장판사 이창형)는 두산인프라코어가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 22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정위가 부과한 시정명령은 유지하고 과징금 3억8200만원 중 3억6200만원은 취소했다. 과징금 대부분이 취소된 이유에 대해선 “과징금 산정 시 관련 고시를 잘못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하도급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한 뒤 이를 경쟁업체에 넘긴 혐의(하도급법 위반) 등으로 2018년 공정위에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2016년 굴착기 부품인 ‘에어 컴프레셔’ 납품업체에 납품가격을 낮춰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다른 제조사에 부품 도면을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에는 납품가격을 올려달라는 냉각수 저장탱크 납품업체의 요청을 거절하고 도면을 다른 사업자들에게 전달했다.
이에 두산인프라코어는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에어 컴프레셔 도면에 대해서는 “기술자료로 볼 수 없다”고 했고, 냉각수 저장탱크에 대해선 “다른 사업자가 제품을 개발하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먼저 기술자료를 폭넓게 정의했다. 사용되고 있지 않은 잠재적으로 유용한 정보나 과거 실패한 연구데이터 등 정보도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 있고, 생산·영업활동에 이용될 정도로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어도 기술자료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두산인프라코어와 하도급업체 간 기술자료 비밀유지 약정이 묵시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비밀관리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하도급계약에 ‘하도급업체가 승인도(기술자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있더라도 기술자료를 요구하기 위해선 하도급법에 따른 별도 서면을 교부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