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가 사정했다”는 피해자 진술과 달리 DNA 증거가 검출되지 않아도 성폭행이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성행위 시간이 짧으면 유전자 검출이 안 될 수 있으며, 피해자 진술이 일관된다는 이유에서다.
2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윤종구)는 전날 강간 혐의로 기소된 중국인 이모(50)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 등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하고 항소를 기각했다.
앞서 1심은 이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6개월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3년간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을 명했다.
이씨는 지인인 피해자 A씨를 강간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노래방에서 갑자기 A씨를 소파에 밀어 넘어트린 뒤 바지를 내리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당시 이씨가 사정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검사에선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1심은 “피해자는 일관되게 사정하는데 걸린 시간이 되게 짧았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이런 경우 과학적으로 유전자 검출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한다)”고 유죄판단 이유를 밝혔다.
2심 재판부 역시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이씨 측은 DNA가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소사실과 부합하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강력 주장한다”며 “(그러나) 검출이 안 됐다고 해서 피해자의 진술을 바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피해자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상식과 경험칙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의 진술을 바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검사를 위한 시료채취 방법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 등을 대비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어떤 경위로 신고했고, 그 신고 과정에서의 진술이 일반적 피해자와 같은 유형의 경험으로서 문제점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홍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