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한 식물원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한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28일 불쾌감을 표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립수목원이 제작한 민간 조형물을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것이다. 우리 정부는 외국 지도자에 대한 국제 예양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확전을 자제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최근 일본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하고 있는 ‘아베 사죄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만일 보도가 사실이라면 양국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불만을 표했다. 그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런 행동은 국제의례상 허용되지 않는다”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한 한일 합의와 관련해 한국 측에 착실한 합의 이행을 계속 강하게 요구한다는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는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츠오 대표도 “이미 양국 정부 사이 합의가 이루어진 경과가 있다”며 “이 같은 합의의 반대 방향으로 양국 관계가 거칠어지는 것은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앞서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한국자생식물원은 지난 25일 오대산 기슭에 조성한 ‘영원한 속죄’라는 이름의 조형물을 다음달 10일 제막식을 열어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고 밝혔다. 1.5m 높이의 위안부 소녀상 앞에 아베 총리로 상징되는 인물의 동상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사과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이름은 소설가 조정래씨가 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언론들은 이 작품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비중 있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한국 내 온라인 반응을 인용해 “칭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외교적 무례’ ‘유치하다’는 비판도 나오는 등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지통신은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조형물이 공개된다며 양국 간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릎 꿇은 동상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산케이는 사비를 들여 조형물을 제작한 김창렬 한국자생식물원 원장의 발언을 인용해 무릎을 꿇은 쪽은 아베 총리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다만 김 원장은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아베 총리를 특정해서 만든 게 아니라 사죄하는 입장에 있는 모든 남성을 상징한다”며 “소녀의 아버지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외교부는 ‘아베 사죄상’ 논란에 대해 국제 예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예양은 ‘예의를 지켜 공손한 태도로 사양한다’는 의미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와 무관한 민간 차원 행사에 대해 구체적 언급은 자제하려고 한다”면서도 “정부로서는 외국 지도급 인사들에 대한 국제 예양이라는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 역시 외국 국가원수인만큼 민간 차원의 외교적 예우 또한 신경써야 한다는 의미다. 이 문제가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확전을 자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형민 조성은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