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서프라이즈 인덱스(ESI)’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시티그룹이 발표하는 지수로 예상 경제지표와 실제 경제지표의 차이를 통해 경기의 흐름을 알려주는 용어라고 한다. 미국의 지난 5월 실업률과 구매자관리지수(PMI) 등이 예상 외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이 용어가 관심을 받은 이후로 미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6월 이후 경제봉쇄 완화로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고 미국의 경제회복 속도도 예상외로 저조하다는 얘기나 나오면서 서프라이즈 인덱스 등장도 뜸해진 듯한 분위기다.
오히려 코로나19 진원지이자 바이러스 은폐 의혹을 놓고 사사건건 미국과 갈등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서 오히려 ‘서프라이즈’를 외칠 만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2분기 3%대의 경제성장률로 가장 먼저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딛고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나라가 된 것이 우선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괄목할만한 사실은 홍콩과 선전, 상하이 등 중국 본토가 올해 들어 글로벌 IPO(주시공개상장)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가보안법 발효로 홍콩이 국제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이 격하될 것이라는 평가를 뒤집을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새삼 주목을 끈다.
27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코로나 여파로 올들어 7월까지 미국과 유럽의 IPO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 줄어든데 비해 중국 기업의 IPO 건수는 251건(555억달러 상당)으로 오히려 98%나 늘어나면서 글로벌 IPO 비중이 43%로 상승했다. 특히 중국 기업들의 직접금융 조달과 해외상장 기업의 홍콩과 본토 회귀 상장이 활발해지면서 이들 지역의 글로벌 IPO 점유율도 40%로 늘어났다.
미국이 뉴욕 증시에 상장된 ADR(미국주식예탁증서. 다른 나라에 본부를 둔 기업이 미국에 주식대신 ADR을 상장하는 제도로 직접 주식을 상장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감리를 강화하고 나스닥 시장 IPO 요건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자 중국 기업들은 보란 듯이 홍콩과 본토에 2차 상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31개 상장사중 13개 기업이 홍콩과 본토에 2차 상장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홍콩에 상장한 알리바바를 비롯 게임회사 넷이즈, 온라인 상거래 업체 JD닷컴 등 우량기업들이 대거 회귀상장 선봉에 서 있다.
홍콩의 경우 2018년부터 차등의결권(개인 대주주)을 허용하기 시작한 것이 우량기업들의 2차 상장을 유치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대해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함으로써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해 적대적 M&A(인수합병)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중국 우량기업들의 홍콩 및 본토 거래소 IPO가 늘어나는 것은 최근 기술유출 의혹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 고조 외에도 중국 정부의 금융개방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기업들로 하여금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보고서는 주식시장을 통한 직접금융으로 은행 등을 통한 과도한 차입 규모를 축소하려는 목적도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의 회융자 구조는 간접적 자금조달 비중이 80%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높으며, 직접 자금도 주식보다는 주로 채권발행을 통해 조달된다.
중국의 금융개혁과 개방은 궁극적으로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일대일로를 완성하기 위한 밑바탕에 당연히 금융허브 정책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달러화에 대항하기 위해 위안화의 국제화 작업을 가속화하는 것과 중국 금융사장의 선진화 작업은 그 쌍두마차로 통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미국의 ADR 규제 강화 등은 중국이 이같은 전략을 가속화하는 구실을 제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세기 초 신생국 미국이 영국과 산업 기술 유출을 놓고 갈등을 빚으며 글로벌 금융중심지가 런던에서 뉴욕으로 서서히 옮겨가던 일이 오버랩되는 건 아닌지, 역사의 반복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아직 중국의 글로벌 GDP 비중은 16%이나 시가총액 비중 9%에 불과한 데서 알 수 있듯 중국 주식시장은 경제 규모에 비해 여전히 규모가 협소하며 가계의 금융상품 투자 비중도 낮다. 뉴욕 증시에 비하면 사실 다윗과 골리앗 격이다.
그러나 올해 기술분야 기업들의 IPO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중국의 나스닥으로 불리는 시가총액 24조위안의 ‘상하이 혁신판’에 상장 대기중인 기업이 200곳을 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미국 실리콘 밸리에 도전장을 낸 중국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엿볼 수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중국 정부의 강도 높은 자본시장 개방 정책을 바탕으로 기술주 중심의 중국 우량기업 상장은 중장기적으로 본토 자본시장의 성장과 금융기관 경쟁력 향상을 앞당길 것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은재 센터 책임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시장개방과 MSCI, FTSE 등 주가지수의 A주(상하이와 선전 증시에 상장된 내국인 전용 주식) 편입 등으로 뮤추얼펀드, 보험회사 및 연금펀드 등 외국인 참여가 지속 확대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