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를 ‘작은 독감’ 정도로 치부하며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했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대량 살상과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됐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제소다.
26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브라질 안팎 50여곳의 보건단체들은 최근 코로나19 부실 대응으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며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ICC에 고발했다. ICC는 2002년 전쟁·반인도적 범죄 등을 저지른 이들을 심리·처벌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법원이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23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 100만명 이상의 브라질 보건노조 네트워크가 이번 고발을 주도했다. 단체들은 고발장에 “보우소나루는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며 브라질인 8만명 이상을 죽게 만든 반인도적 범죄에 기여했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ICC는 브라질 국민들이 보우소나루의 치명적인 실패가 불러올 재앙적 결과를 피할 수 있도록 서둘러 조사를 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 브라질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날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240만명을 넘어서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누적 사망자 역시 8만7400명에 달한다.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지닌 보우소나우 대통령은 코로나19 창궐 초기부터 바이러스를 작은 독감에 비유하며 전염병을 경시해 브라질 코로나19 대유행의 원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보건당국의 경고를 무시한 채 자신의 지지층이 주관한 대규모 집회에 수차례 참석했고, 강력한 봉쇄 지침을 내린 지방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분별한 정치 활동 속에 그는 이달 초 코로나19 진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2주일 넘는 관저 격리 기간 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외부인을 만나는 등 국가 지도자로서의 모범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유지했다. 네 차례에 걸친 재검사 끝에 전날에서야 최종 음성판정을 받았다. 그는 코로나19 완치 소식을 전하며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덕분”이라고 홍보했다.
보오소나루 대통령이 ICC에 제소된 것은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브라질의 법조인 단체인 “민주주의를 위한 브라질 법률가 연합’은 지난 4월 “대통령이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브라질 국민들을 위기에 몰아넣었다”며 보우소나루를 ICC에 고발했다. 3월에는 브라질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로부터 고소당했다. 그가 아마존 원주민 보호구역 내 광산 개발을 허용하면서 원주민들의 거주권과 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