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학생이 경북대나 부산대에 마련된 교양 강좌를 골라 듣고, 강원대 학생은 제주대나 전남대 전공 강의를 수강하고 학점을 받는다.’
전국 거점국립대들이 연합해 비교우위 분야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거점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수도권 인구 집중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대 위기론에도 교수 사회와 대학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큰 진전이 없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논의를 촉진하고 있다. 통합 네트워크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는 김동원 전북대 총장을 지난 24일 만나봤다. 그는 “다음 달 초 다른 대학 총장들과 논의하게 된다. 코로나19 이후 다들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거점국립대 통합 네트워크가 다시 논의되는 배경은.
“과거에는 개념적인 구상이었다면 이제 실질적으로 필요해졌다. 코로나19 초기 대구·경북에 확진자가 많이 나올 때 전북대 다니는 대구·경북 학생들을 어떻게 할지 논란이 컸다. (당시 통합 네트워크가 구축됐다면) 경북대에서 수업을 듣고 학점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대구에 있는 학생이 전주로 올 필요 없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아무래도 부모님 곁에 있는 게 안전하니까. 안전도 그렇지만 코로나19는 대학에 상당한 변화를 요구했다. 원격 강의를 중심으로 한 학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공간적 장벽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는 점을 실감하게 됐다.”
-학생들에겐 어떤 혜택이 있나.
“교육은 서비스다. 좋은 서비스라면 싼 가격에 높은 질, 그리고 좋은 애프터서비스다. 전북대만 해도 교수가 1000명이 넘는다. 교수 한 명이 최소 3개 강좌를 한다. 매 학기 1만개 강좌가 나온다. 9개 대학(강원·경북·경상·부산·전남·전북·제주·충남·충북)이 통합해 규모가 커지면 가격은 낮아진다. 절약된 비용은 서비스 질을 더 높이는데 재투자할 수 있다. 게다가 서비스 공급자(거점국립대)들이 고품질 서비스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최근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RIS)을 추진하고 있다(지자체·대학이 협력해 지역에 맞는 인재를 교육하고 취업시켜 지역에 머무르도록 하는 사업). 충북과 광주·전남, 경남이 먼저 출발했고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거점국립대 네트워크가 국가적인 큰 톱니바퀴라면 RIS는 각 지역에서 돌아가는 작은 톱니바퀴로 서로 상생하면 지역 인재가 수도권으로 쏠리지 않고 지역 내에서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구체적인 로드맵은.
“3단계 방안을 지난 2월 논의한 바 있다. 1단계는 공동·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자원을 공유한다. 2단계는 공동 학위제다. 학부 등 우선 실현이 가능한 단위부터 공동 입시 제도를 도입한다. 3단계가 연합대학 체제 구축이다. 대학별 특성화가 진행된다. 전북대의 경우 논문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2020 라이덴랭킹’에서 거점 국립대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영국의 ‘2020 THE 세계대학 영향력 순위’에서도 국내 공동 5위에 올랐고 세계 랭킹은 200위권이다. 다른 거점국립대들과 협력을 강화하면 연구 역량을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달 9일쯤 총장들과 관련 회의가 예정돼 있다. 공동으로 클라우드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 구축해보면 어떨지 제안할 생각이다. 얼마 전 거점국립대 총장들에게 제안했더니 ‘아주 좋다’는 반응이었다. 총장들 모이기 전에 초안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국립대 최초로 코로나19 특별장학금(등록금 반환) 지급 결정으로 물꼬를 텄다.
“4월 중순부터 논의를 본격화 했다. 다른 대학보다 일찍 시작했다. 논의 과정에서 국가장학금 혜택을 많이 받는 학생들이 더 어려운데 이런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더 적다는 고민이 있었다. 학생들은 등록금 반환의 입장에서 생각했고 대학 본부는 재난 장학금 입장에서 생각했다. 금액이 적더라도 전체 학생에게 일괄해서 주려고 했으나 학생들은 ‘등록금 안낸 사람이 왜 받는가’란 반환 입장이 강했다.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게 됐다. 평소 학생들과 스킨십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2018년 말 국립대 최초로 학생 투표권을 인정한 총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학생들이 대우받고 다닌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취임 후 학생들과 자주 만났다. 이번에 총학생회장과 특별장학금 협의할 때도 딱딱하게 협상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애로사항을 듣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대학 재정을 담당하는 사무국이 긍정적이었던 점도 빼놓기 어렵다.”
-코로나19 와중 2학기 수업은.
“1학기 때 느낀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소통이다. 소통 잘하는 교수는 비대면이든 대면이든 불만이 적었다. 소통이 잘 안 되는, 일방적으로 수업하는 교수는 수업도 안 되고 시험 방식도 합의가 어려웠다. 둘째는 강의 질이다. 온라인 명강사나 배우들처럼 액션이나 리액션이 능숙한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다.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어도 전달하는 방법이 미숙할 수 있다. 보조 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 학습관리시스템(LMS)을 클라우드 기반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다. 화상회의도 바로 가능하고 동영상도 즉석에서 보고 게시판도 즉석에서 확인하면서 출석체크도 편리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클라우드 서비스 외에도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학교 전산망 속도 개선과 카메라 방송장비, 방음 시설 등이다. 정부의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