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마약 매매대금 송금했다면 범행 착수로 봐야”

입력 2020-07-27 13:22

마약을 구매하기 위해 판매책에게 매매 대금을 송금했다면 실제로 마약을 건네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범행에 착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마약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12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판매책으로부터 대마 1.5g을 27만원에 구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대마와 엑스터시 등을 구입하기 위해 판매책에게 3차례 걸쳐 돈을 보냈으나 판매책이 약을 건네주지 않아 미수에 그친 혐의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마약류 관련 범죄는 국민 건강을 해치고, 환각성과 중독성 등으로 인해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크다”며 “대마 관련 범죄로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아 현재 집행유예 기간 중임에도 자숙하지 않은 채 범행을 반복적으로 저질러 죄책이 무겁다”고 했다.

반면 2심은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 마약류 매매의 합의가 성립했다 할지라도 마약류 매매라는 범죄 구성요건의 행위 내용으로 예정되어 있는 행위가 아니다”라며 “실행의 착수로 보기 어렵다”며 징역 10개월로 감형했다. A씨가 마약을 구매하기 위해 돈을 송금했지만 마약을 건네받지 못해 미수에 그친 것은 범죄 성립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대마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의 매매 행위에 대해 매도·매수에 근접·밀착하는 행위가 행해진 때에 실행의 착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원심의 이 부분 판단에는 마약류 매수의 실행의 착수시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