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 20대 북한 이탈 주민(탈북민)이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한 지인이 경찰에 월북한 것 같다는 신고를 했지만 경찰과 군 당국은 손 놓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경기 김포경찰서 등에 따르면 탈북민 김모씨(24)는 지난달 강간 혐의로 한 차례 피의자 신분 조사를 받은 뒤 불구속 입건됐다. 김씨는 지난달 중순 김포시 자택에서 평소 알고 지낸 여성 A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남자친구와 다투고 전화 통화로 하소연 하던 A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인 뒤 함께 술을 마시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사건 현장에서 곧바로 112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체포 등 강제 수사를 하지 않았다”며 “사건 발생 당일 몇 시간 뒤 피해자 측이 신고해 불구속 상태에서 피의자를 조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달 중순 김씨가 피해자를 협박했고, 월북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해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김씨의 신병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탈북 사실은 북한 언론의 보도로 알려졌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6일 오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연 사실을 밝히며 “개성시에서 악성비루스(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7월19일 귀향하는 비상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온 지 약 8시간여 만에 군 당국도 ‘월북자 발생’을 공식화하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관계 당국은 탈북 시기를 2017년으로 압축했으며 이 시기 탈북민 중 연락이 닿지 않는 김씨를 유력한 월북자로 특정해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개성에서 중학교까지 나왔고, 3년 전 한강 하구를 통해 탈북 후 김포에 거주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의 지인인 한 탈북민 유튜버는 이날 자신의 유튜브 생방송을 통해 김씨의 탈북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무시 당했다고 주장 했다. 이 유튜버는 “7월18일 새벽 2시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김씨의) 문자가 떴다”며 “누나 같은 분을 잃고 싶지 않았는데 죄송하다. 살아서 어디에 있든 간에 꼭 갚겠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유튜버는 이어 “‘그래 괜찮아. 그럴 수 있다. 누나는 이해해 줄게’라고 답장을 했는데 아직 읽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며 “18일 김씨가 집을 빼고 지인으로부터 소지금을 달러로 환전한 것을 확인하고 월북이 의심돼 그날 저녁 김포경찰서에 해당 사실을 신고했지만 해당 경찰서는 그의 신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면박을 줬다. 말 그대로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했다.
“자기네 부서 소관이 아니라며 그의 신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 이 유튜버는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신고 했는데 계속 무시당하고, 제때에 대처했더라면 월북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진짜로 넘어가면 봐라는 마음으로 경찰서 입구에 있는 경찰관 얼굴 사진도 찍었다”고 했다.
유튜버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에 온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김씨는 경찰의 거주지 신변 보호 기간이었지만 신변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탈북민은 정착지원 교육기관인 하나원에 입소해 3개월간 사회적응 교육을 받은 뒤 5년 동안 경찰의 거주지 신변 보호를 받는다. 게다 김씨는 사전에 월북을 결심하고 꾸준히 준비한 정황도 포착됐다는 점에서 관리감독이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살고 있던 전세금을 빼고 탈북자의 안정적 정착 지원을 위한 미래행복통장을 해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월북은 허술한 남‧북 감시 경계망의 허점을 드러낸 것은 물론 북한 언론의 보도대로 코로나19 감염이 확인되면 군사‧외교적으로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신문 등은 북한 방역당국이 김씨의 분비물과 혈액을 상대로 여러 차례 검사를 진행한 결과 코로나19 환자로 볼 수 있는 ‘석연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코로나19 환자가 없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김씨가 코로나19 감염자로 확인되면 공식적인 첫 번째 환자가 되는 셈이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