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정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는 유럽평의회 조약에서 탈퇴할 계획을 밝혀 시민들이 항의 시위에 나섰다. 시대를 역행하는 결정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즈비그뉴 지오브로 폴란드 법무장관은 이날 “이 협약이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성(gender)에 대해 가르칠 것을 요구해 부모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면서 “다음 주 탈퇴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지오브로 장관은 더불어 이 협약이 “해로운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면서 “최근 몇년 간 도입한 개혁만으로도 여성들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르신 로마노프스키 법무부 차관은 “폴란드는 이스탄불 협약에서 가능한 빨리 탈퇴해야 한다”면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서명한 이 협약을 “성 역할 혼란”이라고 지칭했다.
‘이스탄불 협약’으로 불리는 이 조약은 전통이나 문화, 종교를 여성에 대한 폭력행위의 명분으로 삼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약은 2014년 8월 발효됐으며 지금까지 터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덴마크, 프랑스, 스웨덴 등 40여개 회원국이 서명했다. 2012년 터키 의회가 최초로 비준했고 지금까지 34개국이 비준했다. 폴란드 정부는 2015년 이 조약을 비준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는 아직까지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면서 “영국과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헝가리. 불가리아, 아르메니아, 몰도바에선 비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헝가리 의회가 지난 5월 “위험한 성 이념을 제시한다”면서 이스탄불 협약을 비준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졸트 셰미엔 헝가리 부총리는 당시 “헝가리 정부는 폭력을 철폐하려 하고, 이스탄불 협약은 가족을 철폐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만 수천명의 여성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는 등 폴란드 전역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이스탄불 조약 폐지에 항의해 거리에 나섰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 마르타 렘파트는 “가정 폭력을 합법화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에선 “법과 정의당(PiS)은 여성의 지옥”이라고 쓴 팻말들이 눈에 띄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폴란드 집권당인 극우 보수 성향의 PiS는 가톨릭교회와 긴밀히 연대하고 있다”면서 “이달 초 재선에 성공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은성소수자(LGBT)들의 권리 증진을 공산주의보다 더 파괴적인 이념이라고 비난하는 선거 운동을 펼쳤다”고 보도했다.
최근 몇 년간 폴란드에선 낙태 금지법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해 여성들의 반대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도 폴란드 30여개 도시에서 2만명의 사람들이 낙태 금지법 강화 시위에 참여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