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사불벌죄인 폭행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말을 바꿨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가해자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기소유예는 기소는 하지 않고 혐의만 인정된다는 처분이다.
헌재는 폭행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A씨가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소유예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2월 전남 나주시에 한 식당 앞에서 B씨의 폭행에 대응해 그의 팔을 잡아채고 발로 걷어찼다. B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A씨의 폭행에 대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며칠 뒤 다시 A씨가 거짓말을 해 용서할 수 없다며 처벌을 희망한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은 B씨의 의사를 반영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는 “기소유예 처분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폭행 사건은 피해자가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처벌 의사 표시가 철회된 경우 통상 공소권 없음 결정이 이뤄진다.
헌재는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내용이 수사기관 피의자 신문조서에 담기는 등 명시적으로 이뤄졌다면 피해자가 다시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뤄진 처벌불원의 의사표시의 효력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했다.
헌재는 “청구인에 대해 공소권 없음의 처분을 해야 함에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며 “기소유예 처분은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