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미국이 이 지경까지… ‘대선 승복·공정 선거’ 걱정하는 처지됐다

입력 2020-07-26 08:11 수정 2020-07-26 14:25
26일로 미국 대선 100일 앞으로 다가와
트럼프 “우편투표, 선거 조작” 대선 불복 시사
바이든 “러시아·중국, 미국 대선 개입말라” 경고
“선거 불복하면 베네수엘라와 뭐가 다르냐” 비판
최악의 경우 군부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의약품 가격 인하를 위한 행정명령 서명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뉴시스

오는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선이 26일(현지시간)로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앞서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그러나 올해 미국 대선 분위기는 다르다.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는 관심사는 뒷전으로 밀렸다. 과연 올해 미국 대선이 정치적 논란 없이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가장 큰 고민거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다 미국 민주주의가 이 지경까지 떨어졌는지에 대한 자책과 한숨소리도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불복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미국을 경악시켰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되면서 올해 미국 대선에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우편투표를 문제 삼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 등 적대국들의 선거 개입 가능성에 대해 경고장을 날렸다.

양측 모두 대선에서 질 경우 “승리를 도둑 맞았다”고 주장하면서 쉽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우편투표 물고 늘어지며 대선 불복 시사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2020년 대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을까’하는 기사를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폭스뉴스 ‘선데이’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승복 여부와 관련해 “나는 지켜봐야 한다(I have to see)”면서 “나는 그저 ‘예’나 ‘아니오’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논란의 불길을 당겼다. 그는 “나는 좋은 패배자가 아니다”라는 말도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는 것은 우편투표다. 그는 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우편투표가 선거를 조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우편투표가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선거로 이끌 것”이라고 비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장갑을 낀 개표 요원이 지난 3월 10일 미국 워싱턴주에서 실시됐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우편투표를 통해 도착한 투표용지를 모으고 있다. AP뉴시스

1억 8000만 유권자, 우편투표 가능…각 주마다 규정 달라 빌미 제공
그러나 코로나19가 다시 들불처럼 번지면서 올해 미국 대선에서 우편투표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NYT는 지난 22일 기사에서 “주(州)마다 법이 다르지만, 올해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의 최소 76%가 우편투표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편투표를 할 수 있는 유권자는 1억8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주들은 우편투표를 쉽게 하기 위해 절차를 간소화하는 조치까지 취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증거도 없이 우편투표가 부정 선거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대선에서 불행한 결과가 나올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무시하기 위한 명분을 쌓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출신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척 해이글은 NYT에 “안전하고, 공정하고, 정직한 선거는 우리 민주주의의 성배(聖杯)”라면서 “우리가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면 러시아·중국·베네수엘라와 다를 바 없다”고 비난했다.

NYT는 미국에서 부정선거는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각 주마다 우편투표에 대한 규정이 다른 것은 우편투표 비난에 대한 빌미를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바이든은 러시아·중국 경고…“대선 개입,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
바이든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미국 정보기관의 브리핑을 받고 있다.

바이든 진영이 우려하는 것은 러시아·중국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돕기 위해 미국 대선에 개입하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P뉴시스

바이든은 지난 21일 “나는 크렘린(러시아)과 다른 외국 정부에 통보한다”면서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나는 외국의 미국 대선 개입을 미국과 개입 국가 간의 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적대적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외국이 무모하게 우리 민주주의에 개입한다면, 나는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대가를 부과하는 대응에 주저하지 않겠다”면서 “그것은 거칠 것”이라고 압박했다.

바이든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가 “여전히 개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도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바이든 진영도 미국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개입, 그리고 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온적인 대처를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선 패배 후에도 백악관 떠나지 않을 것” 주장도
미국 정치권에서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초박빙 표차로 승부로 갈리는 경우다. 이런 상황이 빚어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바이든도 패배를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지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부정 선거라고 주장하면서 백악관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국 역사상 단 한 번도 대선에 불복한 경우가 발생하지 않아 미국 법도 이런 상황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군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대선 승복 여부를 놓고 대선 이후 트럼프 지지층과 반(反) 트럼프 세력이 물리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불길한 시나리오도 퍼지고 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