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다쳤는데 ‘뺑소니’ 택시기사 면허 유지… 왜?

입력 2020-07-26 05:21
국민일보 DB

주정차 차량 사이에서 뛰어나와 도로를 횡단하던 8살 어린이와 부딪히고도 구호조치 없이 현장을 벗어난 혐의로 운전면허와 택시운행 자격을 취소당한 택시 운전기사가 경찰과 기초자치단체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재판부는 사고의 경위와 정도·운전기사의 과실 유무 등을 고려해 볼 때 면허·자격 취소 처분은 과하다고 판단, 택시기사의 손을 들어줬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제2행정부(재판장 이기리 부장판사)는 택시 운전기사 A씨가 전남지방경찰청장과 전남 모 군수를 상대로 낸 자동차운전면허 취소처분 취소 등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19년 8월21일 오후 4시16분쯤 택시를 운전, 전남 한 아파트 앞에서 모 초등학교 방면으로 진행 중 도로를 횡단하던 B군(8)과 부딪혔다.

A씨는 택시를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진행했다. B군은 이 사고로 3주간의 치료를 해야 하는 상해를 입었다.

A씨는 사고를 일으키고도 도주했다는 이유와 함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치상)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이후 검사는 A씨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전남지방경찰청장은 인명피해 사고를 일으키고도 구호 조치와 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A씨의 자동차운전면허를 취소했다. 해당 지역 군수는 이를 이유로 A씨의 택시 운전자격을 취소했다.

A씨는 ‘과실 없이 발생한 사고다. 사고 여부를 인식하지 못했다. 사고 경위를 고려해 검사도 기소유예 처분했다.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손해를 입게 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사고 장면이 촬영된 CCTV 영상에 의하면 A씨는 당시 앞서 진행하던 승용차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진행 속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앞서 진행하던 승용차와 비교해 특별히 과속했다거나 난폭한 상태로 운전하지 않았다. 규정 속도를 준수, 정상적으로 운전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사고가 발생한 도로의 2차선에는 주정차 중이던 차량이 여러 대 있었다. B군은 주정차 차량 사이로 도로에 갑자기 뛰어들어 무단횡단을 하던 중 A씨의 택시 옆부분 쪽과 부딪혔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고 경위로 볼 때 A씨가 사고를 회피할 수 있었다거나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사고 발생에 A씨의 과실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CCTV 영상만으로 사고의 경중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사고 직후 B군은 A씨 또는 주변인에게 고통을 호소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채 그대로 도로를 횡단해 지나갔다”며 “B군의 상해 부위 또한 타박상과 찰과상인 점 등으로 미뤄볼 때 A씨로서는 상해가 발생했다는 사정을 인식하지 못했을 개연성도 있어 보인다”고 봤다.

재판부는 “취소 처분으로 인해 A씨는 생계수단을 잃게 되고 A씨의 나이·건강상태·경력 등을 고려할 때 다른 생계수단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며 “A씨의 불이익이 매우 중대한 반면 사고의 경위·정도·A씨의 과실 유무 등을 고려할 때 취소 처분으로 인해 보호될 공익은 A씨의 불이익에 비해 커 보이지 않는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