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학계 등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고 재판에 넘기지 말라고 권고했다. 수사팀을 비롯해 여권에선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했고 한 검사장은 “현명한 결정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 검사장은 “권력이 반대하는 수사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이 광풍(狂風)을 역사 속에 남겨주면 억울하게 감옥에 가도 담담히 이겨내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 수심위 “취재윤리 위반·공모 인정 안 돼”
외부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24일 대검찰청에서 회의를 열고 이모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을 재판에 넘길지 여부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된 이 전 기자는 계속 수사해 재판에 넘기는 반면 공모 의혹을 받는 한 검사장은 수사를 중단하고 기소도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 전 기자에 대해서는 12명이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고 9명은 공소 제기가 필요하다고 봤다. 반면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중단 의견은 10명, 불기소 의견은 11명이었다.
수심위의 결론은 권고적 효력만 있지만 검찰의 수사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날 회의엔 위원장인 양창수 전 대법관과 미리 선정된 15명의 외부전문가 위원이 모두 참석했다. 수사심의위는 만장일치 결론을 목표로 하지만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검언유착’ 사건은 이 전 기자가 올해 초 신라젠 의혹을 취재하면서 한 검사장과 공모해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에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비리를 제보하라고 협박했다는 의혹이 골자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제보자 지모씨와 일부 정치인, 언론 등이 모의한 ‘함정 취재’에서 시작됐다며 ‘권언유착’의 혹을 제기했다.
지난 17일 이 전 기자가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수사는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전 기자 측이 확인되지 않은 한 검사장과 공모관계를 전제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반발했고 공모 의혹 근거인 한 검사장과의 대화 녹취록 전문과 녹음 파일을 공개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커졌다. 대화 내용을 두고 공모 여부에 대한 상반된 해석이 나오면서 ‘검언유착’ 수사의 적정성 논란까지 제기됐다.
이날 수사심의위가 이번 사건을 사실상 이 전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으로 해석하고 한 검사장의 공모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수사심의위의 이같은 결정에 검찰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 수사팀·여권 “납득하기 어렵다”
수심위의 의결 직후 서울중앙지검은 입장문을 통해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수사팀은 또 “한 검사장으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 포렌식에 착수하지 못하고 피의자 1회 조사도 완료하지 못한 상황 등을 감안해 ‘수사 계속’의견을 개진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16일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한 검사장은 지난 21일 강요미수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9시간가량 조사를 받았지만 조서 열람을 마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이어 “지금까지의 수사내용과 법원의 이 전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취지, 수사심의위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앞으로의 수사와 처리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여권에서도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피의자 소환 등의 아주 기본적인 수사도 하지 않았는데 수사 중지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며 “본래 수사심의위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남용을 통제하는 장치로 기능해야 하지만 지금은 검찰이 부담되는 사건을 검찰 입맛대로 처리하거나 봐주기를 위한 면피용 기구가 돼 버렸다. 목적과 역할을 다시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열린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검에서 구성한 수사심의위라 설마설마했더니 총장이 뽑은 사람이 결국 이렇게 초를 치는구나”라며 “검찰개혁의 방패막이로 쓰이던 수사심의위도 이제는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져야 할 듯하다. 미국 대배심처럼 하든 수술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 한동훈 “역사 속에 남겨지면 감옥가도…”
수사심의위에 결정 직후 한 검사장은 변호인을 통해 “위원회의 현명한 결정에 감사드린다”는 짧은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한 검사장은 25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권력이 반대하는 수사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이 위원회가 나를 불기소하라는 결정을 하더라도 법무부 장관과 중앙 수사팀이 나를 구속하거나 기소하려 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검사장은 또 “내가 위원님들에게 호소드리는 것은 지금 이 광풍(狂風)의 2020년 7월을 나중에 되돌아볼 때 적어도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 중 한 곳만은 상식과 정의의 편에 서 있었다는 선명한 기록을 역사 속에 남겨주십사 하는 것”이라며 “그래 주시기만 한다면 나는 억울하게 감옥에 가거나 공직에서 쫓겨나더라도 끝까지 담담하게 이겨내겠다”고 했다.
한 검사장이 ‘권력에 반대하는 수사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 발언은 ‘조국 일가 수사’를 지휘해 현 정부의 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한 검사장을 옹호했다. 진 전 교수는 “(수심위에 대한)미국 대배심처럼 하든 수술은 불가피하다”고 한 황 최고위원을 겨냥해 “수술을 받아야 할 건 당신 뇌”이라고 비난했다. 진 전 교수는 또 한 검사장의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