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과 관련해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의견을 냈다. 사실상 이번 사건에 검찰과 언론의 유착과 공모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시민들이 판단한 것이다.
심의위 의견은 강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검찰이 무리하게 한 검사장에게 혐의를 적용하려 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사건을 검찰과 언론의 유착으로 단정하고 의혹을 제기했던 일부 범여권 인사들에 대한 비판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심의위는 24일 현안위원회를 열고 한 검사장에 대해 수사중단(10명) 및 불기소(11명) 의견을,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해 수사계속(12명) 및 공소제기(9명)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수사심의위 규정에는 수사팀 검사는 심의위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돼 있다. 심의위는 검찰 개혁 과정에서 마련된 제도다. 회의에 회부된 안건은 이씨와 한 검사장의 강요미수죄에 대한 수사계속 여부 및 공소제기 여부였다. 심의위는 법조계, 시민단체, 언론계, 종교계 등의 시민 150~250명으로 구성되며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다. 회의에는 15명이 참석했다.
한 검사장 측 변호인은 “위원회의 현명한 결정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씨 측 변호인은 “아쉬운 점은 있지만 검찰 고위직과 공모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검찰과 언론이 유착된 사실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취재 욕심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사과드린다. 향후 수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한 검사장의 압수 휴대전화 포렌식에 착수하지 못했고 피의자 1회 조사도 완료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사중단 의견이 나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수사팀은 현재까지 수사 내용과 심의위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앞으로의 수사 및 처리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의위 결론은 이씨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협박성 취재를 한 정황은 인정되지만 이 과정에서 한 검사장의 공모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씨에 대한 기소 결정은 이씨가 이 전 대표 및 가족에 대해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언급하고, 검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로 비춰볼 때 한 검사장이 이씨의 취재에 관여했다고 볼만한 정황은 부족하다는 게 심의위의 판단이다. 이씨의 행동은 개인적인 것일 뿐 한 검사장과 실제 범행을 모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진웅)는 이씨를 구속한 후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심의위에서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중단 결정을 내리면서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심의위 결정은 이씨 측과 한 검사장의 공모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대검찰청 형사부의 의견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날 심의위의 결론은 한 검사장과 이씨의 대화 내용이 공개된 것에도 일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이씨가 지난 17일 구속되면서 심의위 결론도 이씨 및 한 검사장에게 불리하게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KBS가 당시 대화 녹취록과 관련해 오보를 낸 후 녹취록 전문이 공개되면서 둘 사이 대화를 공모관계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당 녹취록에서 이씨는 유 이사장에 대한 취재를 시도하고 있다고 한 검사장에게 말한다. 한 검사장은 유 이사장에게 관심 없다고 대답한다. 이씨가 계속 유 이사장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자 “그런 거 하다가 한 건 걸리면 되지”라고 답한다. 이씨 측은 검사장과 기자의 일상적 대화일 뿐이지 공모를 입증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번 수사를 두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수사 지휘권을 발동하면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갈등을 빚었었다. 추 장관은 기자와 검사가 공모한 의혹이 제기된 만큼 서울중앙지검이 독립적으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윤 총장을 비롯한 대검 지휘부는 서울중앙지검의 수사가 균형감 있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검찰 일각에서는 서울중앙지검이 사실상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흘러나왔다.
그간 범여권 인사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검찰과 언론이 작전을 벌인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사건을 ‘검찰과 언론의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했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검·언 유착 의혹에 윤 총장이 연관됐을 가능성도 높다”고 발언했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심의위에 한 검사장과 이씨의 부산고검 녹취록 대화를 제외하면 둘 사이의 공모 관계를 입증한 별다른 주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