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난치병 환자의 부탁을 받아 숨지게 한 혐의로 의사 2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의뢰받은 것으로 조사됐으며, 그 대가로 1700만원에 달하는 돈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아사히 신문, 도쿄신문 등 현지 언론은 24일 미야기현 거주 오오쿠보 요시카즈(42)와 도쿄 거주 야마모토 나오키(43)가 지난해 11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루게릭병) 환자인 하야시 유리(당시 51세)에게 약물을 투여해 숨지게 한 혐의로 전날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의사인 오오쿠보와 야마모토에게 적용된 혐의는 ‘촉탁(청부) 살해’다.
사건은 2018년 12월 28일 하야시가 트위터에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고통. 공포와 매일 싸우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며 시작됐다. 오오쿠보는 이 글에 “봉쇄할 수단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남겼다.
하야시는 며칠 뒤인 지난해 1월 3일 “‘작업’은 간단하니 카리스마 의사가 아니어도 좋다”고 올렸다. 안락사를 희망하는 듯한 하야시의 글에 오오쿠보는 “기소되지 않는다면 도와주고 싶다”고 답했다. 이후 하야시가 “도와주고 싶다는 말에 기뻐서 울었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의 소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오오쿠보는 하야시가 사망하기 3주 전인 지난해 11월 9일 유서 작성법에 대해 “진심이라면 공증 사무소입니다. 돈은 들지만 (집으로) 와줍니다. 대필이라면 나중에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하야시와 이들 두 명의 의사는 범행 당일 처음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 2명 중 한 명의 계좌에서는 하야시로부터 약 150만엔(한화 약 1700만원)을 이체받은 기록도 있어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이번 사건은 일본 내에서 안락사 허용 여부에 관한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 사건을 전한 기사에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한 채 인생을 끝내고 싶은 것이 환자의 의사표시였을지 모른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반면 ALS로 인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생활하는 후나고 야스히코 참의원 의원은 “‘나라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것이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 난치병 환자들이 ‘살고 싶다’고 말하기 어렵게 한다”고 논평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의사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사망 시기를 극약 등을 써 앞당기는 이른바 ‘적극적 안락사’가 사실상 허용되지 않고 있다. 환자의 동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살인, 촉탁 살인, 자살 방치 등의 혐의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안락사 논쟁이 처음 불거진 이른바 1995년 도카이 대학병원 사건을 심리한 요코하마 지방재판소는 안락사를 인정하는 예외적 조건을 제시했었다. 당시 재판부는 ▲견딜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이 있을 것 ▲사망 시점이 임박했을 것 ▲고통을 제거할 방법을 다 써서 다른 수단이 없을 것 ▲환자 본인의 의사가 명백할 것 등 4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경찰은 이 사건에서 오오쿠보와 야마모토의 행위를 안락사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하야시는 혼자 살며 24시간 돌봄이 필요했으나, 건강은 안정된 상태였다. 또 오오쿠보와 야마모토가 하야시의 주치의도 아니었고, 돈을 받고 하야시와 처음 만나는 등 4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루게릭병은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에 장애가 생기는 병이다. 전신의 근력이 저하되며, 진행 속도는 개인차가 있으나 인공호흡기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진행 속도를 억제하는 약은 있지만 치료법은 확립되지 않았다. 일본 내에는 약 9000명의 환자가 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