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무역·기술전쟁과 코로나19 책임론, 홍콩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갈등에 이어 초유의 ‘총영사관 폐쇄’라는 극한 충돌을 빚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 조치에 맞서 쓰촨성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 폐쇄를 요구하며 보복에 나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신봉자”라며 작심하고 중국 체제 자체를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는 24일 주중 미국대사관에 “중국은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의 설립과 운영 허가를 철회한다”며 “청두 총영사관의 모든 업무와 활동을 중지해야 한다”고 통지했다.
외교부는 “미국은 7월 21일 일방적으로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통지했다”며 “이는 국제법과 국제관계 기본 준칙, 중미 영사조약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중미 관계를 심각히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중국의 이번 조치는 미국의 비이성적인 행위에 대한 정당한 대응으로 국제법과 국제관계 기본준칙, 외교 관례에도 부합한다”며 “(현재 상황을 초래한) 모든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보복 조치로 청두 미국 총영사관을 폐쇄하기로 한 것은 정치적인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두 총영사관은 1985년 문을 열었으며, 쓰촨, 윈난, 구이저우, 충칭 등과 함께 서방 국가들이 인권 상황에 큰 관심을 두는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를 개선하라고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고 있어 중국 정부로서는 골치 아픈 지역이다.
청두 총영사관은 2012년에는 시진핑 주석의 최대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실각 사태와 관련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보시라이의 부하였던 왕리쥔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보시라이의 위협을 피해 청두 총영사관으로 들어가 망명을 요청했다.
중국과 미국은 왕리쥔의 신병 인도 문제를 두고 마찰을 빚었으나 왕리쥔은 결국 30시간 만에 청두 영사관을 나왔고 부패 혐의 등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보시라이도 낙마해 종신형이 선고됐다.
당초 로이터통신은 우한 주재 총영사관 폐쇄 가능성을 보도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직원들이 철수한 상황이어서 우한 총영사관을 폐쇄해봐야 반격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도 폐쇄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홍콩의 금융 및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의 맞대응 카드로 쓰기엔 부담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작심하고 중국 공산당 체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23일(현지시간)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 이유에 대해 “스파이 활동과 지식재산권 절도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의 닉슨도서관에서 ‘중국 공산당과 자유 세계의 미래’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 “중국은 우리의 소중한 지식재산과 사업 기밀을 훔쳤으며, 이는 미국 전역에서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 체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정권”이라고 규정하며 “시진핑 총서기는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신봉자”라고 비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우리와 자유주의 국가들이 추구한 정책이 중국의 쇠락한 경제를 부활시켰다”며 “그러나 중국은 자국을 먹여 살려준 국제사회의 손을 물어뜯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자국 내에서는 점점 더 독재적으로 변하고, 다른 모든 곳에서는 더욱 공세적으로 자유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자유 세계가 공산주의 중국을 바꾸지 않는다면 중국이 우리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사명”이라며 “미국은 그것을 이끌 완벽한 위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폐쇄 결정 후인 22일(현지시간) 미국 내 중국 공관의 추가 폐쇄에 대해 “언제나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청두 총영사관 폐쇄에 대해 미국이 다시 어떤 식으로 맞대응에 나설지 주목된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