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여장부, 첫사랑 손잡고 평생 일군 766억 기부했다

입력 2020-07-24 08:50
이수영 회장과 카이스트 신성철 총장. 카이스트 홈페이지 캡처

80대 여성 사업가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서 국내 첫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며 평생 일군 재산 수백억원을 쾌척했다. KAIST 개교 이래 역대 최대 액수다.

이수영(83) 광원산업 회장은 23일 오후 KAIST 대전 본원에서 676억원 가치의 부동산을 출연해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하겠다고 기부를 약정했다.

이 회장은 “내가 죽기 전에 벌어놓은 돈을 뜻깊게 쓰고 싶었는데 줄 대상이 없었다”며 “우리나라가 잘 사는 길은 과학기술 발전밖에 없다고 생각해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식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돈을 물려줄 게 아니라 기부를 가르쳐야 한다”며 “뜻을 가진 분들이 동참해 지속해서 장학사업이 번창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그가 KAIST에 거액을 기부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KAIST에는 2012년 미국에 있는 8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유증(遺贈·유언에 의한 유산 처분)하기로 결정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 회장은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데 기부하는 것은 제가 생각한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여기던 차에 서남표 당시 총장의 인터뷰를 보고 난 뒤 기부를 마음먹었다”며 “그분을 전혀 모르지만, 과학기술 발전이 국가 발전 원동력이라는 말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2016년에도 10억원의 미국 부동산을 유증해 총 기부액은 766억원에 달한다.

KAIST는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통해 ‘싱귤래러티’(Singularity) 교수를 육성할 계획이다. 10년 동안 꾸준히 과학 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인류 난제를 해결할 연구, 독창적인 과학 지식과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연구에 매진할 교수를 선발해 지원한다.

경기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63년부터 서울신문, 한국경제신문 등 일간지 기자를 하기도 했다. 기자로 일하면서 1971년에는 광원목장을 창업해 주말마다 목장에 내려와 직접 트랙터를 몰며 밭도 갈고 돼지를 키웠다.

1980년 해직된 뒤로는 본격적으로 농장 일과 사업을 확대했다. 선친이 딸의 결혼 비용 등으로 남긴 50만원짜리 적금 통장 두 개를 밑천으로 농장을 키웠다. 돼지 두 마리로 시작한 목장은 1000마리로 늘어났다. 이후 모래 채취 사업과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일궜다. 80년 넘게 독신으로 살던 이 회장은 2년 전 서울대 법대 동창생이자 첫사랑이었던 현재의 남편과 결혼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지검 지청장을 지낸 김창홍 변호사다. 이 회장은 이날 기부식에 남편의 손을 잡고 나란히 참석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