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979년 중국과 수교한 지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총영사관 폐쇄’라는 초강수를 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휴스턴에 이어 미국 내 중국 총영사관 추가 폐쇄 가능성을 거론하고, 국무부와 공화당은 보조를 맞춰 중국 총영사관을 ‘스파이소굴’로 규정하면서 느닷없던 전날의 초강수가 확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폐쇄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중국 측 스파이 행위와 과학연구·기술 절도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휴스턴 총영사관은 체제전복적 행위에 가담해 온 역사가 있다”며 “그곳은 중국군이 미국의 연구 결과를 도둑질하는 거점”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도둑질은 최근 6개월간 심각해졌고, 이는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관련돼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 강경파인 마크로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도 트위터에 “휴스턴 총영사관은 오랫동안 중국 공산당의 거대한 스파이 소굴이었다. 외교 시설이 아니라 중국 첩보작전 네트워크의 중심 줄기”라며 “진작 폐쇄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 도중 ‘미국 내 중국 대사관을 추가로 폐쇄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언제나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문을 닫게 한 곳에서 불이 난 것 같다. 그들이 문서나 서류를 태운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불법행위와 관련된 기밀 서류를 태워 없앴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중국의 기술 절도 문제를 재차 거론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중국 공관 6곳(워싱턴, 시카고, 뉴욕, 휴스턴,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중 왜 하필 휴스턴을 폐쇄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미국이 당초 폐쇄하려했던 공관은 휴스턴이 아닌 샌프란시스코 중국 총영사관이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은 휴스턴보다 규모가 크고 정보기관 업무가 집중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이날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 중국군과 연계된 연구 절도 혐의로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받던 중국인 여성 연구자를 숨겨주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23일 익명의 국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 정보기관 업무의 대부분은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 집중돼 있다”며 “당초 샌프란시스코 폐쇄를 검토했지만 중국계 인구가 많은 이 지역의 특성과 중요성 때문에 부담이 적은 휴스턴을 폐쇄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가 총영사관 폐쇄라는 초강수를 두면서도 실질적인 외교적 파장은 줄이기 위해 휴스턴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선을 100여일 앞두고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목적은 반중 메시지를 강화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것이지 중국과의 외교 전면전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가 국내 정치용 이벤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