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보물 납시니… ‘친절한 국박씨’ 대령이오!

입력 2020-07-24 06:00
‘궤에는 조선왕조실록 몇 권이 들어갔을까?’ ‘산수 속 그 많은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보물 제1970호 '김홍도필 마상청앵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전(9월 27일까지)이 사상 최대 ‘보물 잔치’로 소문이 났다. 이번 전시는 규모와 질도 그렇지만 알기 쉬우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런 설명이 구석구석 붙어 있다.

방학을 맞아 이곳을 찾을 가족 단위 관람객을 배려한 듯 ‘국립’의 왕관 무게를 내려놓은 것 같다. 마치 보물 납시니 ‘친절한 국박씨’가 대령한 듯한 분위기다.
국보 제151-3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친절함을 칭찬하기 전에 우선 규모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지정된 국보·보물 157건 중 89건 196점이 나왔다.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 겸재 정선의 ‘풍악내산총람도’(보물 제1951호),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보물 제1970호)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보물 제2092호), 고려청자…. 다 눈이 번쩍 뜨이는 국보와 보물들이다. 이동이 어려운 건축 문화재와 중량이 무거운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새 보물이 쏟아져 나왔다. 사상 최대 규모 신규 지정 국보·보물을 공개하는 자리다. 문화재 대여기관만 총 34곳이나 되니, 평소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종류의 국보와 보물이 한 자리에서 볼 귀한 기회다.

전시는 도입부에서부터 국보와 보물은 어떻게 다르고, 선정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3부로 구성된 각 섹션 별로 시각적인 보완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이 눈길을 끈다.
보물 제1932호 '청자투각 연당초문 붓꽃이'.

1부 ‘역사를 지키다’는 우리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기록유산을 공개한다. 기록유산의 최고봉인 조선왕조실록을 다루면서 어디서 관리하는지 소개하는데, ‘오대산 사고(실록을 보관하는 일종의 도서관)’ 등 사고의 사진을 함께 전시해 기록물 전시가 주는 밋밋함을 상쇄한다. 국보로 승격된 삼국사기(국보제 322-1호), ‘삼국유사’ 권 1∼2(국보 제306-3호), 개국공신교서 등이 나왔다.

2부 ‘예술을 펼치다’는 미의식이 담긴 예술품을 보여준다. 고려 초기 청자의 탄생을 증거 하는 ‘청자 순화 4년 명 항아리(국보 제326호)를 비롯해 상형청자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청자투각 연당초 문 붓꽂이‘(보물 제1932호) 등을 볼 수 있다. 경북 경산 압량면 신대리에서 출토된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보물 제2017호) 등은 삼한 시대의 놀라운 미의식을 엿보게 한다.

회화에서는 조선 시대 실경산수화와 풍속화 대가의 작품들이 나와 눈이 호사한다. 일제강점기 개인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킨 간송 전형필의 유지를 지켜가는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품들이 대거 외부 나들이를 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금강산의 가을 풍경을 새처럼 내려다보며 그린 ‘풍악내산총람도’, 조선 시대 천재 화가 김홍도의 원숙한 기량을 보여주는 ‘마상청앵도’, 기방 여인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끌어온 일탈의 화가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보물 제1973호) 등 22건의 보물이 전시된다. 3주 단위로 교체하는 만큼 전시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압권은 화원 화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보물 제2092호)와 몰락한 양반 가문의 문인화가 심사정의 ‘촉잔도권’(보물 제1986호)을 나란히 펼쳐 놓은 방이다. 무려 길이 8.5m나 되는 두루마리 2개가 대구를 이루듯 펼쳐져 있는데, 굽이굽이 강산을 구경하는 듯 장관을 이룬다. 그림에는 여행지의 전망대처럼 관전 포인트를 붙여 놓았다. 폭포, 도르래, 동굴 등 두 그림 속에 있는 관전 포인트를 비교해 봄으로써 두 화가의 그림 세계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3부 ‘염원을 담다’에서는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국보 제327호) 등 우리나라 국보·보물의 절반이 넘는 불교 문화재의 위상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문화재청과 공동 개최한 것이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