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결정’ 그후 한달…상주의 아이들은 어디로 가나

입력 2020-07-23 14:00 수정 2020-07-23 14:00
상주 상무 초등부(12세) 유소년팀 선수들이 2018년 10월 8일 대교눈높이 전국프로팀 초등축구리그 경북권역 대회를 우승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우승멤버 중 상당수는 이후 불안정한 구단 상황 탓에 팀을 떠났다. 상주 상무 제공

“3년을 이것만 생각하면서 뛰었는데…너무 허무했어요.”

오후에 훈련이 있던 일상적인 월요일이었다. 상주 상무 고등부 유소년팀 공격수 이지훈(18) 학생은 휴대전화에서 뉴스를 봤던 한달 전 오전을 기억하고 있다. 포털 뉴스란에는 상주시장의 발표문이 떠 있었다. 내년 창단될 예정이던 상주 연고의 프로시민축구단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했다. 반년만 더 노력하면 프로팀에서 뛸 수 있다는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지만 해결된 것은 없다. 당장 경기력에 영향을 줄까봐 애써 생각 안 하려고 하지만, 현실은 외면할 수 없다. “우리가 힘든 만큼, 이런 상황을 만든 어른들도 힘들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이군은 담담하게 말했다.

미드필더 김동진·한재혁(17) 학생은 5년째 발을 맞춘 콤비다. 발재간이 좋은 김군이 패스를 찌르고 상대를 제치는 데 능하다면 한군은 상대 공을 뺏어내고 김군을 보호하는 역할에 능숙하다. 장난기 많은 김군과 과묵한 한군은 잔디 밖에서도 단짝이다. 둘은 2학년이 된 올해 팀의 주전으로 경기에 함께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의 멋들어진 협력 플레이도 이대로라면 올해가 마지막이다. 함께 프로팀 선수복을 입고 싶었던 꿈은 고사하고 당장 축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가 쉽지 않다. “선수로서도 친구로서도…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아요”라고 한군은 아이답지 않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경북 상주 연고 프로시민축구단 창단이 백지화된지 약 한 달여가 지났다. 10년간의 약속을 뒤엎은 결정으로 100여 명의 구단 유소년들이 갈 곳을 잃었지만 여태 아무 대책도, 책임지는 이도 없다. 지자체와 교육계, 심지어 축구계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23일까지 국민일보가 취재한 구단 해체 결정 이후 상황은 개선된 게 없었다. 상주시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던 상주 구단 신봉철 대표이사를 포함해 이사 5명이 이날 일괄 사임한 게 변화의 전부였다. 그는 담화문에서 “여태 상주시로부터 시민구단 미전환 관련해 정식 공문조차 통보받지 못했다”면서 “유소년들의 진로문제가 가장 눈에 밟힌다”고 말했다.

앞서 강영석 상주시장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상주상무프로축구단은 올해 말을 기점으로 막을 내린다”고 발표했다. 10년 전 상주시가 상무 축구단을 유치하며 걸었던 시민구단 전환 약속은 이 발표로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이 됐다. 강 시장은 유소년 학생과 학부모들이 입을 피해를 언급했으나 책임을 어떻게 질지, 어떻게 대처할지는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에 대한 책임은 현재의 제도와 비정상적 운영이 될 수 없게 만든 한국프로축구연맹과 국군체육부대, 상주시민프로축구단 3자 모두에게 공동으로 있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는 시장이 되기 전까지 경북도의회의 교육위원장이었다.

시민구단 창단이 무산되면서 산하에 있던 유소년 100여 명은 당장 팀 해체를 눈앞에 두게 됐다. 군인 신분인 상무 선수들은 이웃도시 김천으로 상무 이전이 확정되면서 뛰는 곳만 바뀔 뿐이지만, 축구만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보낸 유소년들은 그야말로 버림받은 신세다. 한 구단 관계자는 “축구계도 지자체도 교육계도,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아이들인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버려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선수 시절 K리그에서 상무 소속으로 골폭풍을 몰아치며 이름을 날렸던 김명중 유소년 코치는 “어른들도 직장을 잃는 건 마찬가지지만 큰 문제 삼고 싶진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잖은가”라고 되물었다.

당장 내년 졸업하는 고3 아이들은 새로 생길 상주 시민구단에서 뛸 가능성이 컸다. 새로 창단하는 구단의 경우 새로 선수수급을 하는 데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들기에 기존 유소년에서 성장한 선수를 쓸 여지가 많아서였다. 아이들이 애초 인구 9만에 불과한 상주까지 찾아와 축구를 한 이유도 대부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모두 미래를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올해 실업리그가 사라지고 K3·K4에 통합되면서 다른 선택지도 오히려 더 좁아졌다. K리그1·2에서 이미 검증된 프로 출신 선수들이 내려오는 효과가 생기면서 곧장 프로에 가지 못한 어린 선수들이 뛸 기회가 줄기 때문이다.

프로 산하 유소년팀에서 중·고등부 선수들은 대개 축구를 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스카우트 돼 합숙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고2 학생들은 팀이 해체되면 이미 주전이 확고한 다른 유소년팀에서 새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출전조차 불확실한 상황에 남은 1년 중 프로팀 눈에 드는 건 대표팀급 기량이 아니면 언감생심이다. 이적해도 협회 규정 탓에 이전 소속팀 해체 전까지는 3~6개월간 경기에 뛸 수 없다. 올해 서둘러 다른 팀으로 옮겨도 뛰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초등부는 지역사회 아이들이 찾아오는 특성상 축구를 계속하려면 가족 전체가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플레이메이커 지네딘 지단을 닮고 싶다는 초등부 주장 김지환(12) 어린이는 “계속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싶다. 여기서 이렇게 끝내기는 너무 아쉽고 슬프다”면서 “다시 팀을 만들어줄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현재 상황은 2년 전 K리그2 아산 무궁화가 해체되며 앓았던 진통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당시 경찰청이 축구단 운영을 포기하면서 산하에 있던 유소년팀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당시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를 비롯해 허정무 김정남, 김판곤 등 축구원로와 최용수 김병지 송종국 현영민 등 대표팀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 앞 시위를 할 정도로 축구계 전체가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 일의 경우 축구계는 한 달째 조용하다. 당시와 차이점이 있다면 사건 자체가 아산 때와 달리 급작스럽게 벌어져 여론의 이목을 모으기 어려웠다는 점, 성인 선수들이 직접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점과 김천 창단을 앞두고 자칫 지자체에 부담을 줄 수 있기에 축구계가 조심스럽다는 점 정도다.

현 상황에서 그나마 제시되고 있는 대안은 새로 상무 구단을 창단할 김천시가 상주의 유소년들을 그대로 흡수하는 경우다. 그러나 애초 연맹과의 계약에 고등부 창단은 1년간 의무사항이 아닐뿐더러, 초중등부도 기존 김천 지역사회에 있는 유소년 클럽이 새로 창단될 구단 산하로 들어갈 가능성이 상당하다. 굳이 상주 유소년을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김천시청 관계자는 “당연히 검토는 할 것이다. 다만 상주시청 쪽에서 유소년 인수 제안을 전혀 해오지 않았고, 지자체끼리만 얘기할 게 아니라 김천과 상주, 교육청, 국군체육부대까지 최소 4개 주체가 모여서 논의해야 하는 사안”이라면서 “안이 마련되더라도 구단 이사회가 마련될 11월이 되어야 이를 심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