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항상 투정이고 못난 딸이지만 항상 사랑합니다...’
트라이애슬론 선수 고(故) 최숙현(22)은 지난해 경주시청 감독 김규봉, 주장 장윤정, 팀탁터 안주현 등의 폭행·폭언에 시달리던 와중에도 어버이날을 맞아 아버지 최영희씨와 어머니에게 꽃상자를 선물했다. 그 위엔 ‘죄송함’과 ‘감사함’을 표현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최영희씨는 15일 경북 칠곡의 자택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직후 이 꽃상자를 공개했다. 최씨는 “숙현이가 가혹행위를 당하던 와중에도 용돈 30만원까지 넣어 어버이날을 챙겨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 체중이 늘고 복숭아 1개를 먹었단 이유로 감독·선배·팀닥터에게 온갖 폭행을 당하고 “죽고싶다”는 두려움을 표현한 뉴질랜드 전지훈련 이후 한달 남짓 지난 힘들었던 시점에서도, 최숙현은 부모를 먼저 챙겼다.
최숙현은 이후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부산시청으로 팀을 옮겼다. 그리고 가해 당사자들을 처벌받게 하기 위해 경주시체육회·경찰·국가인권위원회 등 각종 공식 루트로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숙현은 벼랑 끝에서 마지막으로 시도한 SOS에 어떤 응답도 들을 수 없었다. 국가 기관들이 빠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이, 가해자 김 감독 등은 가혹행위 목격자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는 등 사건 은폐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22일 국회 ‘철인3종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 분야 인권침해에 대한 청문회’에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김규봉) 감독은 경찰 조사가 진행되던 5월 중순에 경주시청 전·현직 선수들을 숙소로 불러 경찰 진술서를 쓰도록 하고, 다 쓴 내용을 장 선수와 함께 검토한 후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 선수는 “감독님이 ‘가만두지 않을 거다. 내 등에 칼 꽂은 제자는’ 이런 식의 말을 했다. ‘내가 때린 건 인정해’라고 하면서 ‘그런데 내 직장, 내 밥줄을 건드려’라고 반복해서 말했다”고 폭로했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김도환 선수도 “(임 의원의 설명이) 맞다”고 인정했다.
선수 생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마주치지 않을 수 없는 가해자들의 공모 속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서도 부모를 챙긴 힘 없는 22세의 어린 최숙현은 지워지지 않는 폭력의 잔상에 시달리며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 은폐가 시도되는 동안 공황장애에 고통 받아 매일 술을 마시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기도, 괴로움을 잊으러 수차례 자해를 하기도 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리다 마지막에 내린 안타까운 선택이었다.
최영희 씨는 이날 청문회에서 “경찰 조사 과정에서 가해 혐의자들이 증거 인멸이나 말 맞추기 등을 시도한다는 게 우리 귀에도 들렸다. 감독의 위력에 의해서 거짓 진술한다는 말도 들었다”며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숙현이가 가장 힘들어했다. 자신의 몸을 던져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칠곡=이동환 정우진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