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투입…인구 60만 포틀랜드에 집착하는 트럼프 속내

입력 2020-07-23 00:08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 현장에서 연방요원들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하겠다며 나선 이들이 팔짱을 끼고 ‘엄마들의 벽’을 만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위치한 인구 60만명의 해안도시 포틀랜드가 미 언론 보도의 중심에 섰다. CNN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언론들은 21일(현지시간) 지방 소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발빠르게 전했다.

포틀랜드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된 이유는 이곳이 ‘공화당 연방정부 대(對) 민주당 지방정부’의 충돌을 상징하는 지역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5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포틀랜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특수부대 출신 연방요원들까지 투입하며 갈등은 극에 달한 상태다.

포틀랜드는 지난 1980년 이후 단 한 번도 공화당에 시장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대표적인 진보 성향 도시다.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시장을 선출할 만큼 시민들이 소수자 인권과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분위기 덕에 미국 전역에서 젊은이들이 몰려들면서 높은 인구 증가율을 보이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독 포틀랜드의 시위를 콕 집어 맹공격하는 데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대선을 100여일 앞둔 상태에서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는 대규모 시위 배후에 극좌파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이념 갈라치기를 계속하고 있다.

‘법과 질서의 대통령’을 자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진보 성향이 강한 포틀랜드는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데 적합한 도시라는 분석이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포틀랜드에는 연방 정부의 공무원을 폭행하고 연방 정부의 건물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무정부주의자들이 넘쳐난다”며 “그들은 평화로운 군중이 아니다. 이것은 연방 범죄다”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CNN은 “트럼프는 계속해서 포틀랜드에서 지속되고 있는 인종차별 항의 시위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날달 26일 BLM 시위대로부터 연방정부의 건물과 동상들을 보호하겠다며 연방기관에 인력 파견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국토안보부는 이에 관세국경보호청, 이민세관단속국, 교통안전청, 해안경비대 등의 요원들을 차출해 팀을 꾸렸고, 이달 초 포틀랜드에 2000여명의 연방요원이 배치됐다.

지난 17일에는 최루탄과 페퍼볼을 이용해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연방요원들과 시위대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다. 이날 국경순찰전술부대인 ‘보탁’이 투입됐는데 이들은 사실 특수전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이었다. 민주당 소속인 케이트 브라운 오리건 주지사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 “노골적 권력 남용”이라고 반발했다. 영국 가디언은 “군복을 입은 연방요원들의 등장이 오히려 포틀랜드 시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전했다.

포틀랜드는 전초전일 뿐, 트럼프 대통령의 진보 성향 도시 무력 진압 기조는 미 전역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백악관에서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볼티모어, 오클랜드에 범죄가 많다고 언급하며 “이들 도시들은 모두 민주당, 급진좌파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도시들에 이런 범죄들이 벌어지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지방정부가 범죄 대처에 손을 놓고 있으니 연방정부가 연방요원들을 보내 바로잡겠다는 주장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