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을 고소한 피해자가 4년간 서울시 인사담당자 등 20명에게 피해사실을 호소했지만 매번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네가) 예뻐서 그랬겠지” 식으로 얘기하며 사안을 덮으려고만 했다며 서울시 관계자들의 묵인·방조 의혹에 대한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피해자 측은 22일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한 피해사실을 서울시 관계자에게 지속적으로 호소해 왔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는 “피해자가 성고충을 인사담당자에게 언급하기도 했고, 직장동료에게 (박 전 시장이 보낸) 불편한 텔레그램 문자와 사진들을 보여주며 고충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고충을 호소한 대상자는 전·현직 비서관 총 20명에 달하며, 이 중에는 당시 서울시 인사담당자 등도 포함돼 있다는 게 피해자의 주장이다.
피해자의 호소에도 적절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박 전 시장이) 몰라서 그래” “예뻐서 그랬겠지”와 같은 말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되레 다른 부서로의 인사이동을 요청한 피해자에게 “(인사이동은) 시장에게 직접 허락을 받아라”고 하거나 타 기관으로 전보된 뒤에는 “남은 30년 공무원 생활 편하게 하도록 해 줄 테니 다시 비서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성적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피해자가 계속 추행 피해에 노출됐다”며 “추행방조혐의 인정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경찰은 수사를 위해 서울시청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이날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압수수색 필요성에 대한 소명 부족”을 기각 사유로 밝혔다.
피해자 측은 경찰 수사와 별개로 서울시가 추진하는 진상조사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서울시는 이 사안에서 책임의 주체이지 조사의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상조사를 맡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 다음 주에 진정을 접수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서울시는 진상조사단 추진을 철회하고, 인권위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고소장 접수 전날 서울중앙지검은 피해자의 고소 동향을 인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장 작성이 완료된 지난 7일 오후 2시쯤 피해자 측이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고, 설명 과정에서 피고소인이 박 전 시장이라는 점을 알렸다고 한다.
경찰의 최초 인지시점인 8일 오후 2시28분보다 하루 빠른 것으로 검찰에서 박 전 시장 피소 사실이 전파됐을 가능성도 생긴 셈이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은 “피해자 측 변호사와의 통화사실 및 내용 등에 대해 상급기관에 보고하거나 외부에 알린 사실이 일체 없다”고 밝혔다.
황윤태 최지웅 나성원 오주환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