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27): 한국 전쟁, 공포에 휩싸인 미국

입력 2020-07-22 09:27 수정 2020-07-22 09:29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국민일보 홈페이지 ‘미션라이프’를 통해 연재물을 볼 수 있다.

1950년 6.25전쟁 직후 서울 종로2가 서울YMCA빌딩의 파괴된 모습. 건물 안에서 소년들이 밖을 내다보고 있다. 훗날 노 선생이 재건된 이 빌딩 내 YMCA호텔에 묵으며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게 된다.

유학 생활 중 매카시즘 공포를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1950~54년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공산주의 열풍이 불었고 이를 빌미로 인권을 탄압하는 사례가 많았다. 한국전쟁 개입을 통해 미국이 느꼈던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반감이 극우 정치인 매카시에 의해 엉뚱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 이름을 딴 매카시즘 여파는 유학 생활 중에 내게도 미쳤다.

어느 날 미국 이민국에서 나를 불렀다. 미국 정부에 반하는 ‘위험인물’이라며 처신에 주의하지 않으면 추방하겠다고 협박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앞서 대학 기숙사 근처에 정기적으로 의문의 자동차가 주차하는 것이 자주 목격됐다. 차량에 탄 사람들은 누군가를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나였다.

어느 날은 미 중앙정보국(FBI) 요원이 찾아와 경고했다.

“노 선생은 우리 정부가 예의 주시하는 위험인물이다. 우리에게 협조하면 유학 생활이 순탄할 것이고 도리어 도와준다. 그렇지 않으면 추방될 거다.”

이 예상치 못한 감시는 도시샤대학을 졸업하고 소비자운동에 나선 어머니로부터 비롯됐다. 아버지와 주일학교를 같이 다녔던 나의 어머니 노무라 가츠코(1911~2010)는 일본 소비자운동의 대모로 1993년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한국에서는 2005년 가나안농군학교가 제정한 ‘일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무라, 아버지가 일찍 우리와 일찍 작별했지만, 그분은 예수 안에서 정의롭게 사신 분이다. 부모로서 네게 참 많이 미안하구나. 우리 일본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의 세대에게 희망을 주어야 해. 그 때문에 사회정의가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엄마가 너희와 떨어져 지내게 됐어. 너는 총명하고, 하나님께서 축복한 자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도시샤대학 신학부에 입학했다. 어머니는 신학부를 다니는 동안 미국인 선교사를 도와 타이프치는 일을 하며 학비를 벌었다.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 여성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미국 선교사 집에 머문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나 가문으로부터 파문을 각오해야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굴하지 않았다. 주일학교 시절부터 예수가 참 해방자임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이다.
소학교 때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순사가 어린 나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었다.

“어머니와 자주 만나니? 얼마 만에 네게 오시지? 혹시 뭘 주시거나, 외국과 통화하시지는 않았니?”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지만, 순사는 뭔가를 내게서 캐내려고 하는 눈치였다. 순사들은 내게 말을 건네면서 책상 위 책들을 뒤지기도 했는데 어머니가 책 속에 무전기나 불온 문서 등을 숨기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에서였다. 어머니가 미국 선교사를 통해 스파이 짓을 할지 모른다고 감시했던 것 같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