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화재 유족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 못 오게 한 것이 한이 돼”

입력 2020-07-22 00:03
21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SLC 물류센터 앞에서 화마를 피해 대피한 뒤 울먹이는 근무자를 지인이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속 야근하더니 왜 하필 이번주에 주간(근무)이냐고…”

경기도 용인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A씨(58·여)는 벽에 기대어 흐느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A씨의 아들 B씨(39)는 지난해부터 용인 SLC 물류창고에서 상품 입출고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했는데, 이날 그는 지하4층 주차장에서 화마에 목숨을 잃었다. 그에게는 부인과 두 자녀가 있는데, 큰아이는 이제 갓 돌을 넘겼고 둘째는 아내의 태중에서 그를 볼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A씨는 21일 오전 담석수술을 받고 수술실에서 나온 남편이 잠에 들자 TV를 켰다고 한다. TV 화면에는 용인 물류창고 화재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급히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들의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사무소로부터 날아들었다.

A씨가 기억하는 B씨는 속 깊은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최근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자 휴가를 내고 용인에서 충청도까지 면회를 가겠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아들에게 오지 말라고 한 게 A씨에게는 이제 한이 됐다.

소방대원들이 21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의 한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오후 화재현장에서 만난 C씨도 화재가 발생한 물류창고 지하 4층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살아남은 그에게선 사고 현장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야간근무를 마친 C씨는 오전 8시20분쯤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눈을 붙였다. 10여분 뒤에 B씨를 깨운 건 “불이야!” 라는 고함 소리였다. 수 초 뒤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C씨는 동료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파악했다. “건물 입구 쪽의 오뚜기 냉동창고 도크 방면에서 연기가 났고, 이내 무언가 폭발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C씨는 자동차 창문을 올리고 경적을 계속 울렸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이곳에 있음을 필사적으로 알린 것이다.

C씨가 구조대의 손전등 불빛을 본 건 오전 9시 20분쯤이었다. 구조대를 따라 건물을 나오는 동안 신발에는 수북이 쌓인 재가 밟혔다고 했다. 수첩에 약도를 그려가며 취재진에게 내부 구조를 설명하는 C씨의 손에도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이날 경기도 용인 SLC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38명이 숨진지 불과 3개월도 안돼 참사가 반복됐다. 경찰은 사망자 전원이 나온 지하 4층을 발화지점으로 보고 있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창고 입구 부근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해 내부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작업자들이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생을 잃은 유가족 장모씨는 기자들과 만나 “방제 장비는 제대로 구비됐는지, 과거에 유사한 위기상황은 없었는지 등이 모두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씨 등 유가족은 22일 오전 사망자 부검을 참관한 후 용인 서울병원에서 오뚜기, 용인시, 경찰 관계자 등과 만나 장례절차 등에 대한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용인=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