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공급론, 뜻밖에 재건축 규제 완화 마중물되나

입력 2020-07-22 00:10
서울의 대표적인 재건축 아파트인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윤성호 기자

주택 공급론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시장에서는 정부가 최후의 수단으로 미뤄두고 있는 재건축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부는 열흘 넘게 논란의 대상이 됐던 그린벨트 공급론을 끝내 공식 철회하고 수도권 유휴부지 개발로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정부가 뚜렷한 공급 대안도 없이 재건축 확대만은 피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는 상황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시장에는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6·17부동산대책 주택 공급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재건축 규제 완화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방법론이 여론에 회자했다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정부가 4기 신도시를 개발해 공급을 늘릴 거라는 여론이 조성됐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실제로 4기 신도시를 검토했더라도 택지 조성과 검토에 시간이 걸리고 2기 신도시 주민들의 반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급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서울 등 수도권 주택 공급량이 부족하지 않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주택 공급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어 여권 일각에서 그린벨트 해제론이 급부상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그린벨트에 대해 당정 의견을 정리했다고 밝히면서 해제론에 더 힘이 실렸다.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 일대에서는 부동산 매입 문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린벨트 해제론은 곧 서울시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 사실 서울시는 그동안 그린벨트 해제는 물론 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공공연히 서울시가 개발 사업을 훼방 놓고 가로정비사업 등 소규모 정비사업과 도시재생사업으로 유도한다는 불평까지 나오고 있었다. 서울 한 재개발 지역의 공인중개사는 “서울시가 그냥 두면 잘 진행됐을 정비 사업들을 알게 모르게 훼방놓으면서 사업이 더 미뤄졌다”고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린벨트 해제론이 수면위로 떠오르자 뜻밖에 서울시가 재건축 규제 완화를 시사하는 강수를 뒀다.

재건축 등 도심 고밀도 개발을 요구해 온 시장에서는 서울시의 태도 변화를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애초에 정부가 논란의 여지가 큰 그린벨트 해제론까지 꺼내 들면서도 재건축 규제 완화만은 끝끝내 유지하는 것을 두고 반발이 일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재건축 규제 완화가 실현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재건축 규제 완화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있다. 재건축 사업이 조합원을 중심으로 일부에게만 이익이 될 거라는 우려도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정부의 계속된 규제로 재건축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방법이 생겼고, 공급 주택 중 청년 몫을 늘리는 등 공급 효과를 극대화할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