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1030조 코로나 회복기금’ 극적 타결… 합의 막전막후

입력 2020-07-21 16:14
우르줄라 폰데이어라이엔(왼쪽)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21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협상을 마친 뒤 팔꿈치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 해결을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을 투입키로 한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기금의 세부적 구성 방식을 두고 나흘간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20일(현지시간) 합의에 성공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이날 EU 정상회의 관계자들을 인용해 27개국 회원국들이 총 7500억 유로(약 1030조원) 규모의 획기적인 경기 부양 예산안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EU 회원국 정상들이 지난 17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경제회복기금 및 2021~2027년 EU 장기 예산안에 대한 협상을 벌인 지 나흘만이다. 경제회복기금 도입 논의를 주도해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협상을 마친 뒤 “유럽을 위한 역사적인 날”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코로나19 확산 이후로는 처음으로 직접대면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정상회의는 당초 이틀간 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각 회원국이 받아서 쓰기만 해도 되는 보조금과 나중에 EU에 갚아야 하는 대출금을 어떤 비율로 설정해 예산안을 짤 것이냐를 두고 각국이 갈등을 빚으면서 회의는 이틀이나 연장됐다.

특히 재정 상태가 양호한 북유럽 국가들과 재정이 나쁜 남유럽 국가들이 팽팽히 대립했다. 협상 초기 EU 집행위윈회는 5000억 유로는 보조금으로, 나머지 2500억 유로는 대출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오스트리아·덴마크·스웨덴 등 ‘재정 모범 4국’은 개별국 상환 의무가 없는 보조금 규모를 3500억 유로까지만 용인할 수 있다며 버티면서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경제회복기금은 EU의 높은 신용등급을 이용해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린 후 경제 타격 정도가 심각한 국가들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개별국이 갚지 않아도 되는 보조금은 향후 EU 차원에서 상환해야 한다. 보조금이 대출금보다 많아질 경우 EU 전체가 짊어져야 하는 빚이 그만큼 많아지게 되는 구조다. 유럽 내 코로나19 최대 피해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경제회복기금의 20% 이상이 투입되는 등 남유럽에 지원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높은 보조금 비율은 형평성에 어긋한다는 게 4국의 입장이었다.

반면 지난 5월 범유럽 경제회복기금을 처음 제시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온 프랑스와 독일은 “최소 보조금 규모가 4000억 유로는 돼야 한다”며 맞섰다.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이들에 보조를 맞췄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보조금 3900억 유로, 대출금 3600억 유로로 구성된 타협안을 제시했다.

협상 막바지 4국의 마음을 돌린 것은 ‘리베이트’였다. EU는 각 회원국이 조금씩 분담해 전체 예산을 짜는데 경제규모가 큰 국가일수록 분담액이 크다. 영국이 지난 1984년 지나치게 많은 EU 예산을 부담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한 후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재정기여금 일부를 돌려주는 ‘예산 환급제도’를 시행 중이다. EU 집행위는 4국이 타협안을 수용한다는 전제 하에 이들이 2021~2027년도 EU에 낼 기여금 중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을 늘려주기로 약속하며 설득에 성공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검소한 4국에게 돌아갈 리베이트를 느리는 대가로 ‘빅딜’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 결정적 돌파구였다”고 평가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