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걸’엔 여성 뮤지션 ‘연대’ 있었다[인터뷰]

입력 2020-07-22 05:00
엠넷 '굿걸'을 연출한 최효진 PD의 모습. 엠넷 제공

지난 5월 엠넷의 서바이벌 음악 예능 ‘굿 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 출연진이 공개되자 온라인이 들썩였다.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한국을 대표하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효연,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치타와 이영지를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니. 개성이 뚜렷한 여성 뮤지션 10인은 치열했다. 다만 경쟁보단 연대를 택했다. 최근 종영한 ‘굿 걸’을 이끈 최효진 PD는 국민일보에 “서로 모르는 여성 뮤지션이 다양한 해프닝을 겪으며 발맞춰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 PD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를 이끈 이 분야 베테랑 연출가다. 그의 전작들과 ‘굿 걸’은 달랐다. 이전까지는 ‘This is a competition!’(이건 경쟁이야!)을 외쳤다면, 10인의 여성 뮤지션(효연, 치타, 에일리, 제이미, 슬릭, 장예은, 윤훼이, 전지우, 퀸 와사비, 이영지)은 ‘We are a team. This is not a competition!’(우리는 한 팀, 이건 경쟁이 아니야)을 내세웠다.

최 PD는 “여성 뮤지션들끼리 의외로 교류가 없었다”며 “속마음을 들여다보니 사적 교류는 물론 컬래버레이션 기회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 경연보다 화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엠넷 제공

타이트한 룰 없이 온전히 아티스트끼리 무대를 꾸며야 했기에 라인업을 구성할 때 여러 고민을 했다. 아티스트 개인이 시청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각자의 무언가를 뛰어넘을 준비가 된 아티스트를 선정했어요. 그들이 뛰어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아티스트가 그 산을 넘었을 때의 감동이 시청자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죠.”

특히 슬릭의 출연은 파격적이었다. 그는 유명한 페미니스트였고 그래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그가 대표 음악 채널 엠넷에, 대중적인 인기를 끈 뮤지션과 나란히 섰을 때 시청자는 ‘세상이 변했구나’ 생각했다. 최 PD는 슬릭의 첫 무대를 선명히 기억했다. 그는 하얀 상의를 입고 맨발로 무대에 서서 배제됐던 여성과 소수자들의 권리를 담은 가사를 차분히 읊었다. 무대에는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휘날렸다.

슬릭의 출연이 부담스럽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그가 크게 웃었다.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웃음).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저는 슬릭이 흥미로웠고, 궁금했어요. 그가 ‘언프리티 랩스타’에 반감을 표현하기도 했었잖아요(웃음).”

“슬릭을 처음 만난 순간 모든 편견이 깨졌어요. 저도 모르게 선입견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럽더라고요. 대중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걸 깨야겠다고 다짐했죠. 슬릭의 순수함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예능에서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서사를 제대로 보여준다면 무서운 여론이 조금은 줄어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대에 슬릭의 색을 오롯이 담으려고 했어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제약을 최소화했어요.”

엠넷 '굿걸'을 연출한 최효진 PD의 모습. 엠넷 제공

큰 화제를 모았던 슬릭과 효연의 ‘Blinding Lights’ 무대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슬릭이 다소 어려운 주제로 무대를 꾸몄기 때문에 다른 뮤지션의 우려 섞인 시선이 있었다”며 “효연이 먼저 손을 들고 슬릭을 짝으로 선택했는데 대중가요의 정점에 서 있는 효연과 마니아틱한 슬릭이 어떤 무대를 할지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효연은 포기를 염두에 둘 정도로 절망하고 있는 상태였다”며 “그러나 슬릭의 진심은 효연을 움직이게 했다”고 전했다.

모든 출연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가까워졌다. 그게 최 PD의 의도였다. “모두가 서로를 의지하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연대의 감정이 발현됐죠. 사회는 복잡한 관계와 감정이 혼재하지만 결국 믿음과 애정으로 굴러간다고 생각해요. ‘굿 걸’을 하나의 작은 사회라고 생각했고, 어떤 감정을 드러내고 봉합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모든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모습이니 이런 감정선을 왜곡하지 않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