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을 외우는 거면 힘이 들었을 텐데, 우리가 겪었던 일을 우리가 하는 거니까 별로 힘이 들지 않았다.” (권향자·81세) “겪었던 그대로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김경희·72세) “내 얘기가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른 이가 감동 받는 걸 보며 나도 감동 받았다. 내게도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숙자·71세)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이 살아온 삶을 되짚는 연극 ‘문밖에서’(작·연출 이양구)에 오르는 배우들은 이런 소감을 전했다. 극단 해인과 프로젝트 타브(TAV)가 두산아트센터와 공동기획한 이 연극은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 배우들과 ‘일곱집매’ 출연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특별한 작품이다.
오는 25일부터 8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초연되는 연극은 경기도 평택의 K-6 캠프 험프리즈 근방 미군 기지촌에서 과거 미군 위안부로 일했던 노인 여성이 죽은 지 며칠 만에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1976년 미군 전용 클럽, 1992년 기지촌 ‘위안부’ 자치회 ‘국화회’ 창립총회 등 여성 노인들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생의 과제를 일과 가치라는 측면에서 주목하고 있다.
‘문밖에서’는 2013년 월간 한국연극 선정 ‘공연 베스트7’ 등 굵직한 상을 받았던 연극 ‘일곱집매’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극단 해인은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의 트라우마 치유와 사회적 명예회복을 위한 ‘일곱집매’를 시작으로 ‘그대 있는 곳까지’(2016·2017), ‘문밖에서’(2018) 등을 발표하며 미국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의 삶을 표현하는 작업을 꾸준히 지속해왔다.
무대를 지휘하는 이양구 연출은 일련의 작업 속에서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들이 가진 강렬한 표현력에 주목했고 ‘일곱집매’의 주역 배우들과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이 배우로 공존하는 무대를 기획했다. 무대를 디자인한 조경훈 디자이너는 “살짝 열린 낡은 문들과 그 앞에 놓인 세월의 흔적들이 보이는 의자들, 그리고 반대편에 큰 철망은 여성 노인들의 과거와 현재에 자리한 억압과 자유, 방치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