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북한 쿠데타가 일어나 한반도는 전운에 휩싸인다. 북한 친중 온건파와 대미 강경파가 군부 실권을 두고 맞붙은 것이다. 북한이 한·미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내 미·중이 군사적 대응에 돌입하면서 한반도는 반세기 만에 또 한 번 화약고가 된다. 한국은 ‘강철비’같은 폭격을 막아내고 평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한반도 위기상황을 대담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2011년 다음웹툰에 연재된 ‘스틸레인’. 445만 관객을 동원한 정우성 곽도원 주연 영화 ‘강철비’(2017) 원작으로 한때 하루 조회 수가 1000만회를 넘어선 화제작이었다. 작가 제피가루(본명 김태건)는 최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만화 연재가 2회 남았을 때 김정일이 진짜로 사망하면서 조회 수가 치솟았다”며 “복잡한 한반도 정치 지형을 통찰력 있게 풀어냈다는 게 ‘스틸레인’ 시리즈만의 매력인 것 같다”고 자평했다.
최근 IP(지식재산권) 활용 붐을 타고 웹툰-드라마, 영화-드라마 등 콘텐츠 협업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이처럼 웹툰과 영화를 결합한 사례는 ‘스틸레인’이 최초 격이었다. 양우석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피가루 작가가 의견을 보태 만화를 그리고, 이를 다시 영화로 만드는 형태가 정착하면서 일종의 ‘스틸레인’ 세계관이 만들어졌다.
오는 29일 개봉하는 여름 성수기 대작 ‘강철비2: 정상회담’ 역시 최근 다음웹툰·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된 ‘스틸레인: 정상회담’ 편을 영화화한 것이다. 변화된 정세를 반영해 북미 평화협정을 그렸던 이번 만화는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대통령(정우성), 북한 최고지도자(유연석), 미국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이 쿠데타로 인해 북 핵잠수함에 납치되고 폭격의 위협을 마주하면서 시작된다.
실재감을 더하기 위해 양 감독과 제피가루 작가는 해군 협조를 받아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 이름을 붙인 1800톤급 주력 잠수함 손원일함을 취재했고 러시아 킬로급 잠수함 등도 두루 조사했다. 잠수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총격과 폭발신은 박진감 넘친다. 작가는 “실제 전쟁은 영화 같지 않고 조용해서 더 무섭다”며 “폭발 장면 등 작화를 최대한 사실적이고 건조하게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양 감독은 남북이 평화무드를 맞은 1~2년 전쯤부터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작가는 “‘스틸레인’은 시국에도 영향을 받는 독특한 만화”라며 “올해 들어 북미 간 상황이 갑자기 나빠졌던 터라 마음 졸이기도 했다. 매일 뉴스를 보면서 만화를 그렸다”고 전했다.
94학번으로 대학 시절 민주화의 열망을 경험한 작가는 웹툰 데뷔작부터 묵직한 주제의식을 녹여 마니아들을 끌어모았다. 태권브이를 부활시킨 ‘V브이’(2007)는 카프 박사를 물리치고 중년 가장이 된 훈이 주인공이다. 태권브이로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라는 군사정권 종용에 상처 입은 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양 감독과의 인연이 이 작품에서 비롯됐다는 작가는 “태권브이 저작권을 가진 회사에 감독님이 계셔서 우연히 만나게 됐다. 그런데 현대사부터 군사 문제, 남북문제에 이르기까지 단번에 서로의 취향이 통한다는 걸 알았다”고 떠올렸다.
경남 양산 제지공장에 재직했던 아버지가 가져온 만화 잡지 ‘보물섬’을 보며 만화가의 꿈을 키운 작가는 20대 후반 국문과를 중퇴하고 부산예대 만화예술과에 재입학해 만화가로 데뷔했다. 이후 ‘방벽동 이야기’(2008),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2010) 등 현실 인식을 담은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였다. 양 감독과 한국 최초의 라면을 소재로 한 ‘면면면’ 등 새로운 결의 작품들도 준비 중이라는 작가는 “현실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이야기를 계속 발굴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스틸레인’ 연재 때 진영이 갈려 싸우는 댓글에 놀라기도 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토론의 장을 만드는 것도 만화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보여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강경루 기자 roo@kmib.co.kr